확신의 기다림
그런 날이 있다. 오일간의 노동이 힘에 겨워 ‘꼭 늦잠을 자야지’ 하는, 별 볼 일 없는 다짐으로 잠을 청했던 날. 그날의 다짐이 무색하게 비스듬히 누운 햇살에 못 이겨 뜻밖의 이른 아침을 맞이한 그런 날. 핸드폰 알람을 끈 것에 만족 못 해 무려 전원까지 꺼버렸지만 — 딱히 올 연락은 없었다 —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깔끔히 잠에서 깨어버린 날.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아니지만, 수채화를 그린 듯한 파란 하늘 사이사이 박힌 하얀 구름, 그 사이로 삐져나오는 햇살의 온기가 닿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몇 달간 보았던 하늘과는 무언가 조금 다른 이질감에 하늘을 더 자세히, 가까이서 보았다. 평소보다 높은 하늘이, 햇살의 따스함과 대비되는 선선한 바람이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상기시켜주었다. 아, 가을의 내음. 그래, 가을이었다. 꽃은 다 져버린 지 오래인데, 이 향기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잎을 칠하는 물감에 향기가 있는 걸까. 기분 좋은 잡념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그 계절이었다.
계절을 기다리는 행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내가 향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다림이다. 나의 한 치 앞을 몰라도, 계절은 돌아온다. — 뉴스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있다.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환경을 지킵시다 — 이 계절을 기다리기 위해 꼬박 1년을 기다리는 것이다. 1년은 내게는 긴 시간이다. 나는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가끔 사는 로또의 당첨 번호를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불확실성은 나의 인내심을 쉽게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기다린다. 돌아온다는 확신으로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매년 돌아오는 가을에 감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을이 돌아와 주어서,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선선함이 주는 쾌적함은 온전한 사유를 가능케 하고, 그것은 사색에 깊이를 더해준다. 사색이라 부르기엔 별 볼 일 없는 잡념이다. 하지만 평소에 관심 없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행위는 곧 별 볼 일 없다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온다. 어디서 왔을지 모를 강아지의 걸음을 따라 걸어본다. ‘이 아이의 집은 어디일까.’ ‘주인은 어디 있는 거지.’ 같은 망상으로 그 아이의 걸음을 유심히 바라본다. 걸음의 끝은 주인으로 보이는 이의 품속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동시에 생각했다.
‘이 사람은 이 아이가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겠지’
‘돌아오는 것에 대한 확신은 그것에 대한 믿음이구나’
'기다린다는 것은, 곧 믿음이구나' 라는, 그런 생각.
그리고 '강아지의 걸음과 같은 무용한 것을 나는 또, 사랑하게 되었구나'라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