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결핍을 채울 방법은 없어
나는 어릴 적부터 부족함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쉽게 말하지 못했고, 사소한 바람조차 한 번쯤은 미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다. 부모님은 늘 “그건 다음에 사줄게”라고 말하셨고,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건네셨다. 그런 말들이 내 마음에 작은 주름처럼 쌓이면서 나는 어느새 ‘결핍’에 대한 감각을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자란 나는 늘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들처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크게 부족하지 않았고, 크게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결핍이라는 단어는 내 삶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가진 바다가 꽤 넓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크기가 태평양만큼은 되리라 믿었다.
그러다 너를 만났다. 예고 없이 내 바다에 들어온 한 척의 배였다. 너는 그 어떤 이보다도 따뜻했고, 그 따뜻함이 내 안의 잔잔한 물결을 흔들었다. 나는 너를 통해 처음으로 ‘충족’이라는 감정을 알았다. 너는 내게 해를 비춰주었고, 나는 내 바다를 내어주었다. 그 관계는 상호적이었고, 동시에 불안했다.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느꼈다. 그 두려움이 생긴 순간부터, 나는 ‘부족’이 아니라 ‘상실'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너는 내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때로 ‘결핍’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고.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너의 온기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바다에서는 더 이상 뜰 수 없을 것 같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곧 알았다. 너는 떠났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믿었던 바다는 끝없는 태평양이 아니라, 닫혀 있는 호수였다는 걸. 그 안에서만 유영하던 나는, 진짜 깊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내게서 떠나며 해를 가져갔다. 그 후로 내 세상은 조금 어두워졌다. 처음엔 그 어둠이 무서웠지만, 이내 그 어둠 속에서 내가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너라는 결핍이 내 안의 빈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그 빈 공간 덕분에 나는 내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사람인지를 볼 수 있었다. 결핍은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정의였다. 누군가의 부재를 통해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일도, 관계도, 나름의 안정도 되돌아왔다. 이전보다 여유로워졌고, 마음의 폭도 조금은 넓어졌다.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결핍은 다른 것들로는 메워지지 않았다. 너라는 존재가 남긴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고, 너가 피워주었던 감정의 꽃은 여전히 내 안에서 천천히 시들고 있었다. 물은 이렇게 많은데, 정작 꽃병엔 물이 없었다.
이제 나는 결핍을 미워하지 않는다. 결핍은 나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건 내가 아직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여전히 어떤 가능성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건 결핍의 증상인 동시에, 생의 증거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결핍 속에서도 충족이 있고, 충족 속에서도 결핍이 있다. 나는 지금 그 모순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충족한 결핍 상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이 더 이상 슬프게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