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과 균열
나는 어쩌면 꽤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혼자가 편해서였을까, 용기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다가갈 사람조차 없어서였을까.
나는 객관적으로 보면 인간관계가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해왔다.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고 앉아 있었고, 인사 정도는 무난히 건넬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는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낙인은 보이지 않아도 무겁게 눌렀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넸다.
‘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해’
‘자신감을 가져’
‘자기비하 좀 그만해’
그 말들이 걱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지겨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덜 아픈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는 그 말들 위에 겹겹이 쌓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과 나 사이에 얇지만 단단한 벽과 같은 ‘막’을 두고 살아왔다. 투명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얇아서 금방 걷힐 것 같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막. 그 막은 내 마음이 만든 방패였다.
어느 날은 볼록렌즈처럼 타인을 과장되게 보이게 했고, 또 어떤 날은 빗방울 낀 유리처럼 상대의 얼굴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현미경처럼 보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결국 나는 사람들을 철저히 ‘타인’으로만 분류했고, 그 결과 나 역시 그들에게 타인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만남은 철저히 ‘소극적 만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얇은 막을 가볍게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솔직했고, 어떤 이들은 무례할 정도로 거침없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이상하게 빛이 났다. 그들이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빛은 내 막에 균열을 냈다. 그 균열은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불행으로 다가왔다 꿈을 꾸지 않던 내게 꿈을 꾸게 했고, 곧 그 좌절을 안겨주었다. 이상이 없던 내게 이상을 심어주었고, 곧 그것과의 괴리가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예전처럼 막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한 번 균열이 생긴 막은 금세 다시 메워졌다. 하지만 예전처럼 얇은 막이 아니었다. 상처 위에 굳은살이 덧입혀지듯, 더 두껍고 단단한 막이 생겨났다. 그 막은 나를 지키는 대신 세상과 나를 더욱 멀리 갈라놓았다. 균열로 스며들던 빛은 이내 사라졌다. 막은 굳은살처럼 두꺼워졌고, 나는 그 안에 갇혔다 허우적일수록 늪처럼 깊은 우울이 나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