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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jinsoil Jun 02. 2023

여백의 예술 1

20230531

책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항상 하는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느낀 점들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한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의 작업 특히 작업이 좋다고 일컫는 작가들 대부분 오래되거나 전 세대의 토양 아래 지금의 미감에서 세련되거나 미니멀하게 풀어내는 작업이 주류를 이룬다.



모 블로그에서 글쓴이는 이런 한국 도예가들의 작업이 카피와 다르지 않다 비판하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분이 다르다고 주장하신 해외 작가들 또한 내가 보기에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애당초 현대 사회, 물질적 풍요와 다양성, 그리고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떤 것이 새로울 수 있을까? 이것은 카피고 저것은 카피가 아니고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며 무의식 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고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그렇게 새로운 것이라는 걸 어떻게 감히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우연히 떠오른 모티브와 작업이 70억 인구 중에 누군가 우연히 떠오른 작업과 같다고 했을 때 그것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런 문제로 시비가 걸려 온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주장하여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게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라 계속 고민하지만 잠시 침묵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갈 수 있지만 어떤 이는 느린 걸음으로 혹은 빠르게 달려간다. 평범히 걸어가거나 혹은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기어간다거나 하는 방식들 말이다. 공예는 그러한 비합리가 만개한 예술이다. 심지어는 방향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그런 속성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공예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어디를 목적으로 삼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정이나 재료 이전에 말이다)첫 개인전에서 나는 고정된 절대적 사물 그것이 작가가 선언한 어떤 후광이나 우위가 아니라 개별자들의 시야, 나아가 그것을 경험하는 환경을 공유하고 각자 느낀 바를 나누고 이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경험들 통해 얻은 것은 우리가 결국 다른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한다는 것이 공감을 기반으로 하기에 같은 것을 말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나아갈 실마리를 전시로 찾지 못했다.



돌아 돌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데 이우환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작가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다. 그것이 디자인 공예 사이에서 고민하고 디자인과 미술을 구분 짓는 경계 같아 더욱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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