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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jinsoil Jun 02. 2023

여백의 예술 2

20230531

재생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재밌는 점이 많았다. 최근에 달항아리가 유행하면서 달항아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일부 작가들을 그에 편승하며 달항아리를 어렵고 대단한 아우라를 가진 물건으로 포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마다 전시실 한편에 본래 작업과는 다른 달항아리를 하나씩 두는 모습을 보면 (꽤 잘 만든 항아리들이 많다) 달항아리가 가지는 기술적 난이도나 아우라는 사실 대단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달항아리를 시작한 작가이기에 더 공감되었는데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달항아리 작가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분은 항아리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낸다. 그분이 가진 스킬도 스킬이지만 그 방향성이 너무나 뚜렷하기에 개인적으로 그것을 작업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분의 작업을 좋아하고 구매하는 것을 보면 사실 내가 항아리에 대해 고민하는 가치들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판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이 있었는데 판화의 가치는 복제화나 재현화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보며 이 분이 생각났다. 책에선 판이 무한한 변화를 하며 복제를 가장한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그것이 숙련된 작가가 하나의 기형을 찍어내듯 만드는 것과 무엇이 크게 다르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화가 완전히 동일한 것이 있을 수 없듯이 그리고 동일한 형태로 만든 물레 항아리가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방식 또한 작업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물론 나는 공예 기술자와 공예 작가는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해방하거나 머릿속의 것을 넘어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달항아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지만, 재생산의 방식에서 만들어지는 항아리들 또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나 고민이 된다. 그래도 하나 희망적인 것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든 작품을 한 점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다시 모방하거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아마 그 느낌으로 작업을 한다 하여도 온전히 같게 만들어질 수는 없겠지만 (사실 노력한다면 그도 가능할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 그 작업이 마음에 드는 이유와 방식,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그런 작업을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사실 그것이 가장 두렵다. 그로 인해서 내가 작품을 통해 해방된 것들이 다시 내 안으로 끌려들어 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한편으론 늘 그래왔듯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 던져버리는 방식도 생각해 봤는데 앞서 이야기한 판화같이 그것을 복제하여 풀어내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꽤 재밌을 것 같은데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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