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튜버였다. 그리고 우리는 유튜버다.
2016년 겨울, 방송반 모임에 나갔다. 학창시절 방송국 국장을 맡았던 2년 선배형과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우리 아들은 돌을 갓 지난 무렵이었다. 내 휴대폰 사진첩은 온통 아들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했다. 사진첩을 보던 형은 유튜브를 해보라고 했다. 그 형은 미디어회사의 대표였다. 학창 시절부터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영상을 만들고, 학교도 서울예대를 들어갔던 실력자였다. 반면 나는 편집도, 업로드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편집을 배워보겠다며, 유튜브를 배워보겠다며 또 돈을 썼다. 그렇게 시간은 아들의 나이를 세 살까지 견인했다.
점점 유튜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 유튜브 운영 제안을 받았던 시기에 구독자 100명을 갓 넘겼던 한 여자아이의 엄마는 어느새 구독자가 수십만명을 넘어서 있었다. (지금은 거의 1천만명 가까이 늘었다.) 나도 더 늦기전에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편집도 안된 영상을 막 올리기 시작했다. 영상은 간단한 컷편집을 하기 시작했고, 자막도 넣기 시작했다. 배경음악이 들어가기도 하고 간단한 효과도 넣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매일 편집하며 궁금한 편집 기술을 하나씩 습득해갔다. 나도 10만 조회수 영상이 터지고, 구독자 1000명이 넘어 수익화에도 성공했다. 무려 25만원까지 수입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것이 알고싶다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키즈유튜버들을 인터뷰 한다며. 이십대 초반 추적60분에 안좋은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거절했다. 당시 키즈유튜버끼리 단톡방을 운영했었다. 다른 엄마 한 명이 인터뷰에 응했고 방송에도 나갔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원치 않는 방식의 편집. 결국 키즈 유튜브는 대형 채널을 제외한 대부분의 운영자들이 더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그 후로 내가 주인공인 채널을 운영하기로 하며 토크, 자동차, 정치, 리뷰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정치는 나름 괜찮은 결과가 있었지만 딱히 정치색이 없는 나에게 오래 지속하기는 흥미가 떨어졌다. 자동차도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그쯤 사업을 시작했고 영상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기 어려워졌다. 방치된 상태로 수 년이 흘렀다. 내 채널 대신 다른 병원, 회사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우리 채널을 운영하고 싶어졌다.
새롭게 시작한 채널도 올해의 목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