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
설 연휴동안 따님은 외가에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5년 전에는 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아들은 그 자리를 잃었다.
아들은 이미 배터리를 다 쓴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배터리가 있다는 것!
일상속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건전지.
어릴 땐 마이마이와 CDP 를 재생하기 위해 사용했고,
아직도 리모컨, 시계 등등에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건전지는 전력사용량이 많은 장비를 돌릴 때 빠르게 소모되어 자주 교체하게 된다.
시계처럼 1초에 한칸씩 천천히 동작하는 장비는 건전지가 오래간다.
사람 사이의 배터리는 어떨까?
첫 만남에서의 느낌으로 우리는 저 사람과 내가 잘 통한다 혹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이 지속되다보면 왜 이제서야 만난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만큼 좋은 사람들이 있다.
반대의 경우는 보통 인연이 길게 이어지지 않으니 생략한다.
battery
1. 명사 건전지, 배터리2. 명사 수많은 (~)
사전적 의미로 배터리는 건전지, 배터리라는 뜻을 품고 있으며, "수많은"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건전지와 건전지가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쓰던 마이마이는 AA건전지 2개가 필요했다.
테이프가 늘어지는 소리가 나며 멈추면 건전지를 갈아줘야 했다.
중,고딩 시절엔 돈이 없으니 건전지를 구매하는 것도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건전지를 하나만 교체해서 사용한 적도 있다.
물론 오래 가지 않고 또 멈춰서곤 했다.
나의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기에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포지션은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때 전교 1등하던 아이가 우리반에 있었는데 사회 선생님이 엄청 예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빠져버렸다.
전교 1등답게 게임도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결국 전교 1등 포지션을 양보하고 말았다.
사회 선생님은 그 아이가 전교 1등 자리를 잃은 뒤 처음으로 체벌을 했다.
그 아이는 그 선생님에게 배터리가 다 되었던 것이다.
음악과에서도 나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학교 생활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중간에 술병이 나면서 나의 포지션을 잃었다.
그 후 나를 찾던 친구들, 선배들은 사라졌는데 그 또한 당시 나의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다.
군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쓸데없는 열정을 과시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했고, 병사들에게 굳이 잘해줄 필요도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인생상담과 연애상담, 진로 고민을 들어주며 잠을 포기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말년의 나는 유령이 되었다.
나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이전처럼 관심을 줄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나에게 후배들과 병사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으니까.
무대를 꿈꾸던 시간이 끝나고 관객석으로 자리를 이동한 이후,
나는 무대에 설 수 없게되었다.
큰 무대에 오른 적도 없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 또한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배터리를 다 한 것이니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전화가 쉴새없이 울렸다.
신혼때는 새벽 5시에도 전화가 오고 밤 12시에도 전화가 울려댔다.
짜증도 나고 힘들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찾아줄 때가 좋은거라고.
15년의 시간동안 조용히 배터리가 닳고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순간 나는 그 곳과의 이별을 했다.
누구나 겪는 아주 흔한 이야기일 뿐이다.
배터리가 다 되어도 인정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 나에겐 배터리가 남아있다고 힘없이 우기던 날도 있었다.
근데 다 부질없었다.
있을때 잘하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도, 우리도, 너도, 너희도, 그들도, 쟤들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의 배터리는 남은 잔량을 바(Bar)로도 보여주고, 숫자로도 보여준다.
그리고 충전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그 생명력을 연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배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나를 위한 누군가의 조언과 경험담을 귀찮은 잔소리로 치부하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나의 조언이 그들의 귓가를 스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짐을 느낄 때,
내가 잔소리로 치부하던 때의 복수를 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그렇게 못할거라고.
또 퍼줄거라고.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무시하는건지? 호구라고 확신하는건지?
근데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먹는거랑 싫어진거랑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착하다 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단어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챗GPT와 대화하는 게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편하다는 MZ들의 이야기.
처음엔 황당했지만 굉장히 솔직한 용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평소 관심도 없었던 산 속에서 생활하는 자연인 아저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든 생각.
혹시 저분들도 사람이 싫어져서, 사람과의 관계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 산으로 떠난건 아닐까?
사람들과 대화가 줄어들고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처음엔 외롭고 불안했다.
그런데 쓰잘데기 없는 소리 안하게 되서 좋은데 만나면 또 하게 되더라.
유명 작가님께서 자신에게 관대해지길 바란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한 줄의 문장은, 한 권의 책보다 큰 힘이 있었다.
나에게 관대해지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날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알게되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니까
나는 배려였는데 나를 많이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평가하고,
나의 기분을 선택하고,
내가 같이 일하는 내 사람들을 써라 빼라..
타인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이구나.
그래서 나에게 점점 엄격해지고 남들에겐 관대한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구나.
남들에게 나쁘게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그저 서로간의 허락된 배터리를 소모할 때 균형을 맞추고 현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가족이 있고 주변인이 있는건데
그 코어를 나에게 맞추겠다는 것 뿐이다.
너무나도 귀한 조언을 남겨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