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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29. 2024

그 남자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금형이의 오랜 친구 하림이라고 합니다. 실례를 무릎쓰고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퇴근 후에 잠깐 뵙고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미리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어렴풋하게 그 이름을 떠올렸다. 금형이 종종 얘기하던 친구였다.하림은 도통 자기 얘기를 안하던 금형에게 거의 유일하게 들어본 이름이었다.


미리는 이 의문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는 도통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는 거지?”

다행히 고 부장이 임원 회의를 무사히 넘긴 탓에 평화로운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 덕에 미리도 조금은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6시가 되기도 전에 작업하던 문서의 창을 모두 닫고 회사 생활의 낙이 되어주는 메신저 창을 마지막으로 닫고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마포역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미리는 버스 한번이면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번 역은 마포역입니다.”


저녁노을이 질 때의 마포역 뒷골목은 늘 직장인들로 붐빈다. 오늘은 미리도 그 무리 중 한명이 되어 식당 골목을 지나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자 어슴푸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남자의 형체가 보여 미리는 그 곳으로 다가갔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이하림님 되시나요?”

때마침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미리를 보고는 바로 맞은편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한 눈에 봐도 온화하고 공손한 차림새였다.


“아. 어서 오세요. 미리님. 먼길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녁 못 드셨죠? 여기 메뉴판 있으니 드시고 싶은거 알려주시면 주문할게요.”     

오일 파스타를 주문하고 미리는 하림의 얼굴을 응시했다.

하림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세를 바로 고쳐 앉고는 미리쪽으로 몸을 숙였다.

“저 사실은 미리님. 금형이가 지금 휴직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워낙에 말 수가 적은 녀석이라 표현을 하는게 서투릅니다. 제가 사실 이 자리에 나와서 이런 말을 전하는 게 맞는건지 무척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금형이가 저한테 얘기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는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아. 근데 휴직이요? 어쩌다가” 

    

금형은 수년 전부터 우울 증세를 앓아왔다. 금형에게 그런 증상이 찾아온 것은 5년 전 직장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온순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금형에게 직장상사가 저지른 잘못을 뒤집어 씌워 금형이 징계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세상에 사악한 사람이 주변 가까이, 그것도 나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 금형은 그날로부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매일 출근해서 업무에 충실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게 쌓여 마음의 병이 되었던 것이다.

금형은 그 징계로 월급이 깎이는 감봉이 되는 시간을 3개월 보내야했고, 줄어든 월급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깎여버렸다.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녔다. 돈은 벌어야 했고, 어찌됐든 버텨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형의 정신은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워낙 입이 무겁고 자기 표현을 안하던 금형은 혼자서 내내 끙끙 앓다가 최근에 아무 의욕이 없어져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회사도 출근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런 와중에 몇 개월 전에 만난 미리가 그나마 금형의 유일한 웃음 버튼이었다고, 하림은 그렇게 놀랄만한 스토리를 미리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었다.     

미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인지, 아니면 희망의 문을 연 것인지 헷갈렸다. 금형의 속사정을 알게 되어 다행이고 그에게 연민이 느껴져 마음 속으로 깊은 공감이 되었다. 금형이 애처롭고 애달프게 느껴졌다. 

그러나 당장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명쾌한 해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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