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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Feb 16. 2024

38. 상습 낙방생이라 불리운 여자

실기시험을 경험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망설이거나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빠듯한 시간 안에 완성까지 시켜야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빵을 많이 다뤄보고 연습을 꽤 한 사람에게는 여유가 있기에 최종 결과물이 일찍 완성되면 시험 시간이 남아도 만든 빵을 제출대에 올려놓고 시험장을 나갈 수 있다.


단팥빵이라는 난과제를 받아든 이후에는 재료 계량, 반죽 온도, 빵 성형 모양, 최종 결과물 등의 과정마다 순차적으로 테스트를 거치며 점수가 매겨진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땀을 삐질 흘리며 거의 꽁무니로 그 과정들을 어렵사리 거쳐가고 있었는데 초입 단계인 반죽 분할부터 속도가 안났다.

큰 반죽덩어리를 36개로 분할하고 팥 앙금도 같은 수량으로 만들어야 했다.

수량이 많아 저울에 반죽의 무게도 일일이 달아야 했으니 확실히 숙련도가 있는 사람이 유리했다.


첫번 째 시험을 망치고 의욕이 생기지 않아 두번 째도 연습을 하지 못(?)했던 터라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사실 이미 학원에서 배울 때부터 "아 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보다 제빵과정은 애초부터 취미로 그냥 쉬어가는 느낌으로 접수했으니 당연한 인과관계였다.

시험은 학원에서 보라고 하니 갑자기 말 잘듣는 학생처럼 접수한 거였고, 또 혹시나 하며 운에 기대는 나쁜 습관이 불러온 행동이었다.


요행은 없었다.

나름대로 꾸역꾸역 과정들을 거쳐가며 반죽을 완성했고, 발효실에서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렸다.

그 시험장에서 맨 마지막으로 발효실에 반죽을 넣었고, 일찌기 반죽을 넣은 사람들은 하나 둘 발효실 문을 열어 적당히 부풀어오른 빵 반죽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빵이 발효되려면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미 먼저 넣은 사람들이 발효가 다 된 빵을 꺼내는 통에 내 반죽은 발효실 최적의 상태라는 보호막 아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발효실을 자꾸 두리번 거리며 아기 보듯, 내 반죽들을 노심초사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발효실에서 반죽을 꺼낸 사람들은 오븐에 넣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하늘이 노래지듯 식은땀이 흘렀다.

오븐은 미리 예열을 해놔야 되는데 정신 없는 나머지 사전에 예열해놓는 작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망했다. 망했어."


하는 수 없이 그제라도 예열을 해놔야겠다 싶어 오븐 온도를 원래 맞춰야하는 온도보다 훨씬 더 높게 올렸다.

빵이 타도 일단 오븐의 온도가 올라가야 구울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여유있는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나 홀로 발효실과 이제 막 예열을 시작한 그 오븐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시험 종료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었기에 발효실에서 제대로 부풀지 못한 반죽을 꺼냈고, 뜨거운 오븐에 일단 밀어넣었다.


"휴"

오븐 창으로 빵 상태를 보아하니 엉성한 모양에 착찹했지만 한편으로 마지막 과정인 빵 굽기까지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험 종료 20분 전입니다."

나는 어거지로 오븐에서 빵을 꺼내어 쟁반에 애증의 단팥빵 36개를 차례로 올려놓았다.

단 한개도 맘에 드는 모양으로 나온 게 없었지만 제출했다는 데 나름 의미를 두자고 스스로 달래었다.

어떤건 시커멓게 빵 표면이 탔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아갸 되는데 반대로 볼록 튀어나와 이미 실격처리의 빵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실기시험도 찝찝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빠져나왔고,


2주후 결과가 나왔다.

학원 사람들 중에도 제과와 제빵 둘다 붙은 사람은 드물었다. 당시에 둘다 붙은 사람은 한명 정도였고, 두세번 만에 두과목에 대한 합격의 영예를 안은 친구가 한 세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제빵아 안녕. 집에서 그냥 빵 만들 정도만 되면 됐지."


학원에서는 물론이었고, 주변에서도 내가 시험본 걸 아는 지인들은 두번째 불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걸 누구보다 제일 빨리 안 남편은 내게 이렇게 불렀다.

"상습낙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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