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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Feb 26. 2024

흐느끼는 그의 등

마주 앉아 한 두잔 따르던 술이 어느 새 한병을 넘어 두병 째 테이블에 놓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깥 풍경은 오렌지색 조명이 켜진 실내를 더욱 깊고 아늑하게 만들었다.

그런 바람에 미리는 순간 여기가 집인가 하는 착각이 일었고, 짙은 밤이 감싸 안은 블랑주의 따사롭고 몽환적인 오렌지 불빛에 녹아내리듯 긴장감도 다 풀렸다.     

“금형님. 참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 참고 지냈어요? 그러니 마음에 병이 생기죠.”

“그랬나봐요.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했어요. 약도 처방받았는데 장기적으로 먹어서 좋을 건 없더라구요. 그래서 왠만하면 혼자 극복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미리는 금형의 어깨에 손을 올려 툭툭 토닥이다가 이내 자신의 술잔을 들어올렸다.

“금형님. 앞으로 더 건강해져요. 제가 장담은 못하겠지만 금형님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세 번 중에 한번은 함께할게요.”

미리가 든 술잔에 금형이 자신의 잔을 부딪치자 가슴에 벅찬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 쳤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투명한 잔이 순간 흐릿해졌다.

눈가에서 얼굴로 떨어진 미적지근한 눈물에 금형은 어쩔 줄 몰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리는 더 짙어진 오렌지빛 조명 아래에서 그의 등을 말 없이 토닥였고, 금형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미세하게 울렁대는 그의 어깨가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안 미리는 연약한 어린아이 같이 느껴지는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제야 금형은 몸을 서서히 틀어 미리 쪽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 사이 더 짙어진 어둠 속에서 금형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크리스탈 알처럼 투명하게 빛나보였다.     

“미리님. 아 제가 실례를 한 거 같아요. 저도 사실 너무 당황스럽네요. 이러려고 미리님을 만나자고 한 건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금형님. 오늘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너무 기쁜 마음인걸요. 금형님 마음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아 미리는 고개를 들어 벽을 보았다.

짙은 브라운 색을 띈 앤틱 스타일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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