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환하게 켜진 극장 안은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한 듯 생경했다.
어둠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벅차고 설레이던 감정들이 환한 불빛 아래 갑자기 멈춰 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미리는 슬그머니 손을 빼서 축축하게 젖은 손을 말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님. 정말 공연 잘 봤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거 같아요. 우리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갈까요?”
“네. 좋아요. 금형님.”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미리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홍대리가 혹시 여기 오지 않았을까?’
미리는 뮤지컬 티켓을 준 그가 혹여 공연을 보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하게 불안하면서도 그가 나타나길 바라는 얄팍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그러나 극장을 완전히 빠져나와 금형이 이끄는 곳으로 가는 중에도 홍대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금형은 이자까야 집 문을 열고 중세시대 신사의 모습처럼 미리를 인도했다.
작은 공간에 놓인 테이블은 둘 사이의 거리를 더 가깝게 좁혀주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상체를 앞으로 숙여 얼굴을 마주했다.
“사장님. 여기 나마 비루 두잔이요.”
“캬흐. 역시 맥주는 쌩이에요. 인생 별거 있나요? 이런 게 행복이죠. 그쵸 금형님?”
미리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입꼬리를 활짝 올린 채 금형을 쳐다봤다.
“정말 만족스런 밤이네요. 미리님.”
그 순간의 노곤한 행복감은 영원히 그들 사이에 박제될 것 같았다.
나마 비루의 잔은 하나 둘, 그렇게 그들 앞에 쌓여갔고 그날따라 금형은 평소답지 않게 조금은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미리님. 저 다음 달에 회사 복귀해요. 저랑 문제 있었던 그 부장님이 나가기도 했고 저도 언제까지 이렇게 우울하게 있을 수 만은 없어서요. 돈도 벌어야하고.”
“아. 그래요? 잘한 결정이에요. 막상 부딪쳐보면 의외로 괜찮을 수 있어요. 뭔가 머리 속으로 생각을 오래 하다보면 오히려 더 기분이 가라앉잖아요. 잘될거에요.”
금형은 이전에 회사를 떠올릴 때 눈동자가 어둡고 파리했지만 이번에 말할 때는 약간의 기대감 같은 게 서려있었다.
미리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시계를 봤는데 어느 새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와 벌써 이렇게 됐네. 아 이제 집에 가야되는데 좀더 놀까봐.’
코너를 돌아 테이블에 다가서려는데 금형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형님. 괜찮아요? 여기서 이러면 안되는데. 어서 눈떠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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