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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Jun 17. 2024

고백의 시간

나마 비루의 잔이 비자마자 연거푸 들이마신 탓인지 미리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금형이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는 금형의 모습을 보자니 애처로운 생각도 들었지만 극장 안에서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술집까지 잘 이어져 오고 있던 터라 산통이 탁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자까야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금형을 부축하고 길거리로 나온 미리는 택시를 잡으려고 어플을 여는 순간 아차 싶었다.

“금형님. 집이 어느쪽 이랬죠? 택시 부르려고 하는데 제가 금형님 집을 모르네요.”

금형은 미리의 어깨에 머리를 욱여 기댄 채 힘을 주고 있다가 슬며시 눈을 뜨며 말했다.

“일산이에요. 미리님.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고개를 바로 세워 미리를 보는 금형의 눈이 촉촉이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아. 이대로 헤어지기는 좀 아쉬운데. 왜 저렇게 취해가지고는..’

미리는 두 가지 마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혼란스러워했다.     

그 사이 게슴츠레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린 금형은 택시를 부르려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미리에게 말을 걸었다.

“미리님. 저. 저기 한잔 만 더 할래요?”

미리는 속으로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호오. 그럴까요? 근데 금형님. 더 마셔도 괜찮은 거에요?”     


둘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 사냥감을 노리는 헌터가 된 듯 불 켜진 술집을 찾아 헤맸다.

뮤지컬 극장에서의 말랑하고 두근거리던 심장이 다시금 넘실댔다.

금형과 미리는 잡은 손을 더욱 꽉 움켜잡았고 점점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술집에 가까이 다가갈 때쯤 금형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미리를 지긋이 바라봤다.

차갑고 짙푸른 새벽녘 하늘은 금형의 얼굴을 더 어둡고 분위기있게 만들어 당장이라도 금형에게 달려 안기고 싶을 정도였다.

“미리님. 한동안 고단함에 지쳐있던 저한테 이런 선물을 줘서 정말 고마워요. 뮤지컬 뿐만 아니라 미리님은 저를 미소짓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저 미리님을 좋..좋아 하는거 같아요.”

“아.하아. 금형님. 저도 금형님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간 맘고생 많았는데 이제라도 좀 더 즐겁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저번에 말한 것처럼 제가 금형님 힘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 드릴게요.”     

하마터면 미리는 금형의 맑게 젖어있는 눈을 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뻔 했다. 

    

‘잃은 밤’

금형과 미리는 간판에 적힌 상호를 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가게 문을 열었다.

청록색 벽에 오렌지 빛 조명이 천정 아래 군데군데 걸린 특이하고도 몽환적인 술집이었다.

“여기 보드카 오렌지 두잔 부탁드려요.”

둘은 옆자리에 꼭 붙어 앉아 잔을 부딪쳐 들어올렸다.

“치얼스. 금형과 미리를 위해.”

미리는 부끄럽게 웃으며 금형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는 머리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둑한 새벽의 하늘처럼 깊고 어두운 천장에 진한 오렌지 불빛이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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