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잘하네
22년에 퇴사를 하고 지금의 진로로 이어주게 만든 그래픽 디자인과의 인연에 대해 말하자면 짧은 기간에 비해 할말이 많은 편이다.
전공을 했다거나 어디선가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보니 이 분야와 일로서 연관성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과거의 직업이 이쪽과 전혀 관련도 없었기에 지금 내딛고 서 있는 현실을 보며 나도 놀랄 때가 있다.
눈치보며 고백하건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고상한 곳에 가서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약 2년 정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이 디자인 업계도 만만치 않은데다 꽤나 험난한 것 같다.
전공자들이나 알 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런 업계에 나는 티나지 않게 조금씩 다가가 슬쩍 엄지 발가락을 끼워 넣었다.
솔직히 이 업계라고 해봤자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들을 꾸준히 하는 것 뿐이다.
이쪽과 무관했고 무지했던 내가 이 분야에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건 아마도 오랜 직장생활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시도하고 집중한 결과로 얻어진 귀한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래픽 디자인 학원을 다닐 때 수업을 빠릿하게 쫒아가지 못해서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이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는 누구보다 우수했던 것 같다.
수업을 들을 때 이론 과정이 어느정도 끝나면 직접 디자인 해볼 수 있는 실기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설레면서도 재미있었다.
비록 수업 내용은 완벽히 이해가 안되고 툴 다루는 속도도 늦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별개의 내가 나타나 주눅들지 않고 작업을 해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을 살짝 놀라게 만든 작업물이 있었다.
사실 나도 순간순간 놀라면서 작업을 했다.
'오. 꽤 괜찮은데? 이렇게 잘해도 되나. 와. 나 재능있는거 맞나보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이유는 디자인도 만족스러운데다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꽤 괜찮은 작업물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그 쾌감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한다.
그건 바로 잡지 디자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책을 읽는 것보다 잡지를 더 좋아했던 게 영향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 잡지 디자인은 우리집을 주제로 글도 살짝 곁들여서 만들었는데 까다로운 남편도 꽤나 좋아했다.
데스크탑 한쪽 폴더에 숨어있는 그 디자인이 아까워 생각만 하다가 올해는 드디어 잡지 만들기에 돌입하기로 했다.
어차피 디자인은 거의 다 해놨던 거라 글과 몇가지만 더 추가하고 보완하면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이 첫번째 잡지 기획 프로젝트 1탄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엔 또 다른 주제의 잡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확실히 머리 속에서는 현실보다 진도가 훨씬 빨라 저 만큼 더 앞서 가있다.
내가 좋아서 만드는 나만의 잡지, 이제는 원한다면 그 누군가도 자신만의, 자기 집만의,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잡지를 가질 수 있기에 그 여정을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