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30. 2023

디자인 학원으로 가는 길②

그 아저씨 2화

그렇게 하루하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길을 걸어갔다.

집에서부터 직선거리로 쭉 걷기만 하면 되서 가볍게 운동하는 셈 치면 딱 좋을 거리였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안보였던 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어느 시점 부터 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 도로 옆 산책길을 허둥지둥 경보하듯이 걸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었는데, 그 날은 먼 발치서부터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 아저씨는 내가 가는 방향하고 반대 방면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나 보다.

그렇기에 그 아저씨와 내가 걷다가 교차되는 지점이 항상 있었고, 그 지점을 스치듯이 찍고나면 각자 엇갈려 반대 방향으로 걸어 가는 식이었다.

보통은 집과 학원의 절반 정도 지점에서 늘 마주쳤고, 그 교차 지점도 내가 얼마나 늦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은 내가 집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 아저씨를 마주쳤는데, 나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평소보다 많이 늦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날은 그 아저씨를 지나쳐 더 빨리 학원으로 뛰어가야만 했다.

아저씨의 시간은 늘 똑같았다. 단지 내가 왔다갔다 하는 이유로 교차 지점이 달라졌을 뿐.


그런데 이 아저씨의 걸음걸이가 완전히 평범하지는 않았다.

주변 볼새 없이 바삐 걸어가던 나의 눈에 그 아저씨가 들어왔던 이유도 한쪽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잘못 봤나 하고 지나쳤는데, 만남이 반복될 수록 나는 아저씨의 걸음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맞은 편에서 봤을 때 왼쪽 다리, 그러니까 아저씨로서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연세는 한 60대에서 70대 사이로 보였고, 그럼에도 늘 같은 길을 같은 시각에 부지런히 다니셨다.

그리고 파란 색 천에 앞주머니가 달린 배낭을 항상 메고 다니셨다.


그 짧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아저씨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다리가 불편하실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같은 길은 가시는데 어디로 가나 궁금하기도 했다.


5개월 가까이 여름과 가을을 지나 초겨울까지 그 길을 늘 그아저씨와 마주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날은 맞은 편에서 오는 아저씨가 마치 원래 내가 알았던 사람처럼 느껴져 인사를 할 뻔 했다.

"아, 아니지. 내가 아는 분이 아니었지."

사실 인사를 해도 될법 했는데, 나도 낯을 좀 가리는 인간이어서 끝내 그걸 실행시키지는 못했다.


그 날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즘의 아침이었다.

항상 보이던 아저씨가 왠일로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늘 나보다 더 빠른 시간에 앞서 걷고 계셨던 분인데 왠지 모르게 걱정스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학원 시간이 임박해 계속 직진하며 걸었다.

그 길은 도로 옆이긴 하지만 산책로처럼 되어 있어서 중간중간 벤치랑 넓적한 나무 마루가 설치되어 있는 정자가 놓여있었다.

대부분 오전시간엔 운동하는 어른들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젊은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어, 쉼터에서 쉬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 정자같은 쉼터를 막 지나치려 할 때쯤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눈은 저절로 그쪽을 향해 멈췄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자세히 보니 그 아저씨가 정자 마루에 앉아 계셨고, 다리가 불편하신지 신발을 벗고 계셨는데 한쪽 다리는 다름 아닌 의족이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아저씨가 다리를 절고 계셨구나."


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봐 얼른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더 빨리 걸어갔다.

아마 그 아저씨도 나를 맨날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는 정신없는 아줌마 정도로 기억은 할 거 같아서, 이내 그 장면을 못 본것 처럼 고개를 돌려버렸던 것이다.


아저씨가 왜 그렇게 뒤뚱거리며 걸었는지,

그리고 걸을 때 움직임의 범위가 커서 지나칠 때 남들보다 더 몸을 틀어 길을 비켜줘야 했었는지.

비로소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완전히 그 아저씨를 이해하게 되었다.


학원수업을 마친 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이상하게 이 아저씨의 모습은 잔상으로 많이 남아서, 결국 나의 작은 모니터 안에 남기게 되었다.

아저씨가 계속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앞으로도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 학원으로 가는 길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