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지하철 2호선은 무척 붐빈다.
그런 환경 안에 놓이면 이게 2호선인지 3호선인지 9호선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열차마다 칠해진 고유한 색상이 사람들에 둘러쌓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행선지가 매일 가는 방향이 아니라면, 붐비는 열차 안에서 어느정도 긴장은 하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옆 사람과의 간격이 팔을 움직일 정도의 공간이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내 앞에는 은빛과 검정색의 머리가 섞인 중년 여자가 서 있다. 왜인지 이 실버그레이 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 중년 여성을 보면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실버 그레이 머리를 가진 여자들은 대체로 교양있고 우아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일단 실버그레이가 빛을 발하려면 머리숱이 많아야하고 윤기가 흘러야 한다.
그건 타고난 부분이 크겠지만 어찌됐든 관리를 할 정도로 부지런하거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머리카락으로 영양 공급도 잘 되야 가능한 스타일이기에, 먹고 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짐작해 볼만 하다.
반면 먹고 살기 바빠 삶이 팍팍한 우리 어머니들의 머리란 대체로 짧게 숏컷을 쳐서 뽀글거리거나, 머리를 틀어올려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흩날리게 놔둘 여유란 없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만 해야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머리카락은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잘 가꾸고 윤기가 나는 그 은회색 머리는 우아했지만, 내 곁에는 없었다.
그래서 멀리서만 또는 화면에서만 봐왔던 것이다.
오늘, 2호선 전철 안에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실버그레이의 여자는.
그런데. 우아하지 않았다.
등산모로 가려진 얼굴은 자주 주변을 응시하며 두리번 거렸고, 그때마다 실버그레이의 머리가 예민하게 흩날려댔다. 고개를 내리깔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그녀의 머리는 어딘가 불쾌하고 음흉해 보였다.
"이번역은 강남입니다."
실버그레이의 여자가 내리려고 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앞사람, 옆사람을 과격하게 밀쳐대며 문 쪽을 향해 걸어갔고, 어찌나 몸을 많이 움직이며 지나갔는지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날카로운 바람이 기분 나쁘게 일렁였다.
실버그레이라고 다 우아한건 아니구나.
결국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의 실버그레이 머리는 불쾌함과 음흉함을 심어주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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