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거친 파도 속으로 - 스타트업 생활(6)

by 밥반찬 다이어리

그런 시간들이 한달 쯤 쌓이니 낯설었던 강남의 사무실에서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무거웠던 출근 길 발걸음도 처음보다는 가볍게 느껴졌고, 내 앞자리 젊은 친구 둘과 대화하며 업무를 배워가는 맛도 있었다.

특히 이 분야에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나를 우대해주고 좋게 봐준 그 친구들에게 나는 더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것들, 이를테면 일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 다던지, MZ세대 직원들과 점심 메뉴를 고르며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같이 일을 하는 행위들은 내게 충분히 새로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줬다.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던 새로 개발하는 어플에 적용되는 문구를 직접 작성하고, 앞자리에 앉은 디자이너 친구가 만든 어플 디자인도 같이 검토하며 나는 새로운 분야에 꽤 그럴듯하게 모양새를 잡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전 직장에서는 대체적으로 큰 범주 내에서 조금씩 다른 몇 가지 업무를 순환하며 맡았고, 사람이 많아 단계별로 업무 담당자가 있었기에 이렇게 광활하게 업무를 직접 다룰 기회는 없었다.

이 회사에서 일을 함으로써 이전에는 써 보지 못한, 크게 필요하지 않았기에 발휘되지 못했던 역량들을 비로소 하나 둘 꺼내어 써 보면서 나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비록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의 갈증에 목말랐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있었지만 하나 둘씩 일을 해낸 후에는 생각 이상의 보람을 느꼈고, 심지어 재미와 설레임까지 느껴졌다.

“하니까 되네.”


성취감과 보람은 이전 직장에서도 느꼈었다.

그러나 좀더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일을 하게 된 상황에서 다가오는 성취감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렇게 각자 맡은 일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 가던 어느 날, 출근 시각인 9시가 되었는데도 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전에도 팀장은 집이 멀어 정체가 되면 늦은 적이 있었기에, 오늘도 그러려나 싶어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일정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보면 "더이상은 안되겠다"싶은 순간이 온다.

그럴 즈음 부사장은 팀장이 코로나 증상이 있어서 출근을 못한다는 소식을 나에게 알려왔다.

팀장이 새로 맡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녀의 부재는 상당한 타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코로나 증상이면 하루 이틀 못나오는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기에 더더욱 업무상 문제가 커지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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