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갇힌 공간에서의 자유,자가격리의 시작

05. 갇힌 공간에서의 자유-자가격리의 시작

by 밥반찬 다이어리

떨리는 심정으로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확진 소식을 알린 후, 보고 내용을 메모장으로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글의 논조가 자꾸 반성문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머리로는 보고서를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글의 방향이 반성문처럼 흘러가는 바람에 나는 중심을 다잡고 객관적인 사실만 쓰자고 계속 되뇌어야만 했다.

간신히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워 담백하게 사실 위주로 고쳐 써서 마무리를 지었다.

다행히 성격적으로 여유가 있고 오픈된 분이라 걱정말고 잘 쉬라고 해주셔서 한결 맘이 편해졌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과 몇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상 그렇지 못했다.


이어 보건소에 역학조사를 위한 나의 동선 히스토리와 카드 사용내역, 만난 사람, 연락처 등을 기입하여 보내야 했다.

컴퓨터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A4용지에 빽빽하게 적어도 2페이지 가까이 채워지는 상황이었다.

"나 왜이렇게 많이 만났지."

손으로 한글자 한글자 쓰다보니 한숨이 새어나왔고, 갑자기 80년대 컴퓨터도 없던 시대로 뚝 떨어져 홀로 고립된 것 같았다.

인류가 컴퓨터를 쓰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손가락 조금 썼다고 마치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세번째 손가락이 움푹 패였다.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자니 연필을 오래 쥐고 글씨 연습을 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잠시 스쳤다.


역학조사 내용을 쓰면서 나의 동선에 엮인 지인들에게 하나둘 코밍아웃(코로나+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SNS의 무서움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슨 연예인이나 셀럽이 된듯, 관심이 한몸에 쏟아지고 전화와 카톡이 쉴새없이 울려댔다.

지인들은 대놓고 내게 원망도 못하고 그저 갑작스런 통보에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밀접 접촉자로서의 처지를 깨닫고는 조금씩 원망섞인 어조로 바뀌어갔다.

그도 그럴것이 밀접자는 7일간 재택근무로 전환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면서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구조에 갇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주변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야 하는 이중고를 치뤄야했기에 그들에게 상당한 부담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코로나 확진 소식은 도미노처럼 주변인의 주변인들까지 PCR 검사를 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거의 카오스 상태에 이르게했다.


나는 그들에게 끼친 피해를 생각하며 내내 괴로워했다.

죄인은 아니지만 죄인이 된 나는 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가격리의 첫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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