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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Sep 27. 2023

17. 거친 파도 속으로-스타트업 생활(11)

컨퍼런스 행사 중에 우리쪽 홍보 부스로 한 외국인이 찾아왔다.

회사의 대표 사업 상품을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는 '문법이 맞네 틀리네', '쟤가 나보다 더 잘하는데 해도 될까' 이런걸 생각하다가 영어실력은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왠지 나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앞섰다.

약간 남미계열 느낌이 나는 외국인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키오스크 사용법에 대해 꽤 집중하며 설명을 했다. 말을 하는 도중 좀 더듬긴 했지만 그 외국인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사업 아이템에 관심이 있다면서 명함을 건네며 추후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 외국인이 지나가고 난 후 같이 일하는 젊은 직원 두명과 부사장은 나를 쳐다 보며 엄지를 들어보였고, 뭔가 뿌듯해하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대단한 영어를 한 것도 아니고 유창하게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 당시 나눈 대화조차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상황에 집중을 하고 부딪쳐서 해냈다는 그 느낌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성황리에 컨퍼런스를 끝마치고 다시 회사 업무로 복귀하여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컨퍼런스의 영향으로 접촉해오는 업체들이 많아졌고 나는 회사를 대표해 그 업체들과 소통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초반에 내가 하기로 했던 사업계획서 작성과 팀장의 부재로 인한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 그리고 회사 전반에 걸쳐 하는 일은 점점 많아졌고 책임감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어느 날 새벽, 사업계획서 작성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뒀나."


물론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의 형태가 좋았고 주체적으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영역들이 많고 인정받는 건 전 회사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았다.

하지만 뭔가 안정적인 구도가 아닌 상태로 회사에 내밀하게 종속되어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 전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그 피로의 굴레로 들어가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여기서 일을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과 나 스스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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