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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Oct 03. 2023

18. 스타트업 생활 마무리, 그리고 방황

내가 맡은 가장 큰 업무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인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초기창업 패키지에 해당되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여러 형태의 자료 조사와 통계, 스토리 작성을 거의 마무리하고 서류 붙임만 보완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새로 채용한 성실하고 적극적인 직원이 꼼꼼하게 서류를 챙기며 보완해주고 있었다.

회사에서 제일 굵직하게 추진하던 업무 하나가 나의 주도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어 마음 한켠의 묵직함을 덜어내고 홀가분해 있었다.


조금은 급작스럽지만 이쯤에서 나는 발을 빼야만 했었다.

진정으로 내가 퇴사를 한 목적과 이유를 곰곰히 따져 그 근원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 있어 이 스타트업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20여년간 다닌 회사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마냥 평화로울 것 같았던 마음에 조급증이 슬슬 찾아왔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아예 아무도 없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완전 제로 상태의 백지장에 맨발로 서있는 나 자신에게 점 하나도 찍어내 줄 수가 없었다.

도무지 무얼 해야할지,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때부터 나는 나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금은 슬프고 어이없었던 사실은 어릴 때나 학창 시절, 사회 초년생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뭘 잘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조차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 나이에 뭘 할 수 있을지 전혀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맨몸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도 없었고, 그보다 내 자신에게 넌 뭘 해야된다 라는 걸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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