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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Oct 29. 2023

22. 비대면 배달이 대면 배달로 바뀌는 순간

굉음처럼 쩌렁쩌렁 울려대는 주문 알람에 기계적으로 벌떡 일어났고 순간 머리가 멍해진 채 얼음이 되었다.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득한 나는 주문 알람이 울리는 순간 "식으면 안된다"는 일념하에 로봇처럼 벌떡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의외의 긴장감으로 뇌 활동이 자유롭지 못함을 느꼈다.


지체할 새 없이 음식을 픽업해야할 장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도를 잘 보는 타입이 아니라 시린 손을 불어가며 지도 앱을 켜고 우여곡절 끝에 음식점을 찾았다.


"이런 데가 있었네."

내가 헤매서 그렇지 집에서 정말 가까운 거리에 배달음식점이 있었다. 평소에 전혀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쿠팡에서 왔습니다."

긴장한 탓에 헐레벌떡 식당에 도착한 나는 아직 음식이 준비되지 않아 조금 기다려야 했다.

회사 출근할 때도 이렇게 분초를 다퉈가며 긴장을 하지는 않았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손님이 주문한 스테이크 한상자를 받아들었더니 실제 배달해야 될 고객의 집 주소가 떴다. 

그러면 그 주소지를 따라 문앞에 내려놓고 오기만 하면 끝이다.

"수저 포크 필요없습니다. 음식 집 문앞에 두고 가세요."

손님이 요청한 메세지가 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코로나가 창궐해진 이후 완전한 비대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얼굴 마주칠 일 없어 이 배달 알바가 인기가 많은 요소로 작용했겠다 싶고 나도 안심했다.

아는 사람도 없지만 혹시라도 얼굴 마주치면 괜히 나도 멋적어지기 때문었다.


이제 큰 과제의 절반을 해낸 셈이었고 기분이 꽤 가벼워졌다.

저녁시간대고 아직은 해가 짧아 꽤 어두운 길이어서 찾는 데 쉽지 않았지만 콧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그날 따라 네이버 앱에서 위치 인식을 제대로 못한 건지 분명히 근처에 왔다고 표시는 뜨는데 도무지 정확하게 집을 알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콧노래도 멈췄다.


"아 고기 식으면 안되는데."

겨우 가까스로 찾은 그 집은 주상복합 형태의 빌라 스타일 이었다. 식당 건물 왼쪽 옆 귀퉁이에 주택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으로 올라가자 오래된 철문의 현관이 보였다.

"휴우."

스테이크가 든 비닐봉지를 두고 가려는 순간 검은 철문이 빼꼼히 열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주문 고객임을 직감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인지 사과인지 모를  목례를 했다.

그리고는 얼른 계단을 뛰어내려가 집으로 줄행랑치듯 달려갔다.


집까지 가는 데는 5분이 걸렸으려나. 한숨을 돌리고는 생각했다.

가만보니 그 식당에서 주문 고객 집까지 도보로 5분 이내 정도의 거리였다. 그래도 배달비를 주고 배달을 시켜먹는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여하간 내가 길을 헤매는 바람에 배달이 좀 늦어졌고 기다리던 손님이 궁금했던 나머지 문을 열었는데 그때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결국 손님의 비대면 배달 요청은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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