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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Nov 02. 2023

23. 배달은 접자

첫번째로 찹스테이크 배달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큰 일을 치룬 듯 두려움에서 벗어나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경험삼아 해보자고 시작한 배달이 생각보다는 부담스러워서 두번째 알람을 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한번만 하고서는 배달을 해봤다고 말하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고 놀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내일배움카드로 배우고자 했던 훈련 프로그램의 시작까지는 20여일 정도가 남았는데, 편히 쉴 생각 조차 안하고 있는 내가 의아했다. 회사 다니면서는 그렇게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평화로운 일상의 정적을 깨는 요란한 굉음이 예고없이 또다시 울렸다.

두번째 배달 알람이 온 것이다.

이번에는 무슨 한식 찌개같은 류였다. 알람 소리를 듣고는 또 얼음처럼 몸이 굳어져 긴장을 하고는 얼른 식당에 가서 음식을 픽업해 배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내달렸다.

첫번째 비대면 요청 고객을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게 되어 내심 임무 완수를 못했다는 생각에 찝찝했는데 이번에는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분주하게 뛰었다.


대낮에 들어온 주문이라 환한데다 식당까지 가는 데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음식이 든 비닐을 받아들고는 주문한 고객의 아파트 동,호수를 확인하며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그것도 고개를 들어 몇번을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아파트는 숫자가 겉에 표시되어 있어 확실히 찾기가 쉬웠다.

드디어 고객의 주문요청대로 비대면 배달에 성공했고 음식을 고객의 현관 문 앞에 슬~ 내리고 사진까지 찍어 앱으로 전송하였다.

그거 하나 배달한다고 이리저리 뛰었더니 쌀쌀한 날씨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해냈다는 생각에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던 차에 다음 교육까지는 공백이 있어 주중에 남편이 사는 집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이상하게 또 내게 배달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내가 집에서 있는게 못마땅한 건가 싶어 "에라 그래 한다 해" 하면서 배달앱을 켰다.

나는 늘 도보로 하는 배달이었기에 주문량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이 앱의 편리함은 내가 어느 지역에 있던 "ON" 버튼만 누르면 아무데서나 배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도 해보기로 했다.


띠리리링!

굉장한 소음이 울렸고, 나는 또 기계적으로 벌떡 일어나 음식점으로 내달렸다. 이번에는 치킨이었다.

저녁나절 치킨은 진리가 아니던가.

어떤 손님이 치킨을 시켰을까 사소한 호기심이 일어났고, 치킨이 식기전에 배달해줘야한다는 일념으로 상가를 찾아 헤맸다.

그 지역은 똑같이 생긴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 헷갈려서 찾기가 어려웠다.

가까스로 찾아낸 치킨집에 들어가 인사를 하니 기다렸다는 듯 바로 치킨을 내주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고객의 집주소가 뜬 어플을 보면서 열심히 찾아다녔다. 남편이 사는 집과 분명 가까운 오피스텔인데 왜 찾기지를 않는지 고개를 계속 갸웃하다가 시간이 늘어지자 점차 식은땀이 흘렀다.


고객의 주문 요청은 이번에도 동일했다.

"수저 포크 필요없고 비대면으로 문 앞에 놔주세요."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너무 똑같이 판상형으로 생긴 상가들만 늘어서 있으니 구분이 안되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엉뚱한 상가를 갔다왔다 반복하다가 지나가던 사람한테 물어서 힙겹게 그 손님 집 앞으로 갔다.

거의 현관 앞으로 도착해서 치킨을 놓으려던 찰나 스윽 회색 현관 문이 열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곤 손님한테 사과를 구했다.

"아이구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들어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손님의 하얀 얼굴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잘 먹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하고 잘생긴 얼굴이어서 깜짝 놀랐다. 동시에 대충 하고 나온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 환한 얼굴에 흐르던 온화한 미소가 찬바람으로 얼었던 두 뺨과 마음을 한방에 녹여내렸다.

"이런 배달이면 정말 할 만하네."


운 좋게도 인상 좋은 아름다운 미소의 청년과 대면했고 컴플레인 대신 미소를 받아오긴 했지만 나는 그 후로 배달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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