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니 꼭 한번 기회를 만들어서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노래 다 잘하지 않나요?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나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매번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하며 대표로 무언가를 부르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못하는 나를 굳이 다그치지는 않는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으니 잘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여길 뿐이다. 한 번 정도는 꼭 배우게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못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귀에서 마음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라도 탄 듯 착륙해버리는 노래를 만나면 수도 없이 듣기도 하지만, 반드시 내 목소리를 통해서 불러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다만, 오롯이 내 목소리의 힘으로만 어떤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원곡파괴의 수준이 되어버리기에, 원곡을 틀어놓고, 마치 그 음악이 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커다란 고래라도 된 것처럼, 그 등 뒤에 내 목소리를 태우고 함께 나는 것이다. 그러면 한없이 부족한 내 노래 실력으로도 고도가 높지는 않아도, 분명 하늘을 나는 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나는 꼭 녹음한다. 그리고 여러 번 듣는다. 이게 노래할 때의 내 목소리구나 하고 신기해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결코 잘해서가 아니라, 내 목소리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만족감을 가진다.
어차피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부른 것도 아니고, 들려주려고 부른 것도 아니고, 내가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이니 자유로울 뿐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부른 플레이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플레이 리스트 보다 많이 듣곤 한다.
노래와 글은 닮은 구석이 분명 있다고 여겨진다. 글은 백지라는 악보에, 단어라는 음표를 가지고, 문장이라는 마디의 합으로 이루어진 한편의 노래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노래를 부를 때의 그 느낌과 꼭 같은 마음이 된다. 글로 노래를 했다는 말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것과도 닿아있다. 나는 내 글 읽는 것을 좋아한다. 결코 잘 써서가 아니다. 이 글이 내 목소리로 부른 노래라는 이유, 그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노래를 배울 것이다. 적어도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싶기 때문에, 내 이 감정들을,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내 목소리라는 악기의 적절함을 발휘해서 불러보고 싶고 들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 갈 수 있는 무언가가 내게 있다면 작곡도, 작사도 해서 정말 나만의 노래를 불러보는데 까지 도달하고 싶다.
그때가 올 때까지, 적어도 글로 노래하는 것을 멈추진 말아야지, 그 마음으로 오늘도 나의 노래를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