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dox of Incentives
"돈을 더 많이 주면, 직원은 정말 더 열심히 일할까?"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그의 저서 <경제심리학>을 통해 흥미로운 반전을 제시합니다. 높은 인센티브가 오히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역설'이죠.
시장 선거와 시민단체, 그리고 지금의 '무꿍'을 거치며 제가 직접 겪은 보상에 대한 것을 정리한 에세이 글, 시작합니다.
댄 애리얼리 '경제심리학'의 초기 내용의 대부분을 다루는 이야기는, 높은 인센티브가 정말로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논리적인 답변을 내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실험을 진행했고 인도의 노동자부터 농구선수 바퀴벌레까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계층과 개체를 가지고 그들이 사회적 압박감이 심한 상태(경쟁자, 감시자, 높은 인센티브 등)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중간 결론은 과도한 동기의식 특히 높인 인센티브 상황에서 오히려 낮은 성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중간결론은 중간중간 예를 드는 '금융업, 혹은 관계자'들의 높은 인센티브와 연결됐고 그들의 성과가 주주의 돈으로 제공하는 높은 인센티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정말 그럴까? 나라는 사람 경험을 통해 생각해 보려 한다.
2010년 집안 어른이었고 '삼촌'이라고 불렀던 분의 의원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당시 40대 초반의 한 보좌관을 만났다. 점잖고, 좋은 학벌에, 좋은 외모에 거만하지 않는 나이스한 에티튜드까지 전략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인성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정치의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인물로 보였다.
이후 그 사람 주변에 다양한 인간관계와 마주치고 함께 대화하면서 내가 본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기 시작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이고 이상적(사회적 경제) 관점이 더해진다면 좋은 결과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첫 만난 이후 5년이 지날 무렵 그 사람은 수도권 고향에 출마를 결심했고 대가 없이 그를 돕게 되었다.
사실 그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이 경제적 부족함 또한 좋은 정치인의 조건이라고 당시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인적능력을 초기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그러한 일들을 하나둘 돕다 보니 어느새 수도권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거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한겨울 온열기도 없는 20평 남짓한 공간을 청소하고, 페인트 칠하고, 집기를 나르고 책장을 만들면서 하나하나 채워 나가며, 매일매일 목표(당선)를 위해 머릿속에 구상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이상적 관점을 포함된 전략적 정책을 뽑기 위해 그 시의 민원게시판 게시물 내용 5년 치를 살펴보고 이전 시의 행정감사보고서를 모두 읽고, 기초의원을 만나 대화를 했다.
(사실 이건 내 경험상 매우 시간낭비다. 대부분 기초의원은 자신관련된 위원회 정도는 모르겠지만 시행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정치색 혹은 관심분야에 따라 특정 부분에만 대화를 반복하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전반에 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선별프로세스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낭비다)
아무튼 지금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어려운 업무 프로세스를 스스로 만들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엄청나게 높은 나의 집중력과 능력을 갈아 넣어 하나하나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수도권 도시의 시장이 되었고 나는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여기서 성과는 위 책에서 말하는 인센티브와는 조금 다른 개인적 성취(나의 눈이 틀리지 않았고, 나의 노력이 당선이라는 결과를 귀결됐다)였다.
하지만 선거컨설턴트와 같은 비용대비 노력의 프로세스를 적용한다면 이와 같은 일과 만족도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를 제외한 스스로에게 높은 인센티브를 바랐던 다른 사람들은 사분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선전부터 스스로 급과 자리를 나누고 주변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를 떠들고 다녔다. 내가 기억하기론 당선된 그 시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자리를 주겠다고 한 적이 없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인센티브를 만들고 나누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나에게 회유도 했고 자리를 보장(?) 하기도 했고 협박과 배척을 하기도 했으며, 어느새 인센티브로 뭉친 파벌이 다른 사람을 밀어내며 분란을 만들기도 했다. 당선 이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높은 인센티브를 스스로 생각했던 사람은 좌천됐고, 그 이후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그 시장을 비난했다.
그렇게 공수표를 날렸던 그 사람은 나중에 시장이 마련한 자리로 가더니 다시 누구보다 충직한 후배이자 동생으로 다시 큰 목소리로 시장을 칭송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주어지지도 않은 높은 인센티브는 그에게 업무효율의 상승보다는 저하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주어진 자리마저 제대로 업무를 못해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안목과 노력의 만족이라는 조그만 성취를 가지고 그들과 멀어졌고, 그들과 그렇게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인생을 지금은 살아가고 있다.
높은 인센티브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일의 성과보다는 자신의 보상에 대해 더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지지 않은 인센티브를 어떻게 할지, 어디에 쓸지, 누구에게 쓸지 등 일의 성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게 한다.
주어지지도 않은 인센티브를 위해 파벌을 이뤘던 그 무리는 매일밤 모여 술을 마시며 '몇 월에 이렇게 하고, 이런 업체에게 이렇게 하고, 어떤 형님에게 이 일을 주고 등등등' 선거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매일 시간을 보냈으며, 매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은 나와 단순자원봉사자에게 전가되었다. 왜냐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당선은 기정사실이었으며, 그 이후 누릴 인센티브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경제심리학'에서 금융종사자 파티에 강사로 초대된 작가가 11월과 12월 업무효율은 떻습니까?라는 물음에 다들 연말에 주어질 인센티브 얘기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처럼 그 무리들 또한 똑같은 패턴을 답습하며 조직의 효율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 시장과 그 무리들과 거리를 두고, 나는 다시 이상적인 나의 바운더리로 돌아왔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무상급식과 우리 먹거리 보급을 주력으로 하는 시민단체와 연결되었다.
당시 그 단체는 서울의 시민단체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체였지만, 고질적 문제인 자금의 부족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인력부족 등 일반시민의 선의에 기대지 않으면 운영이 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장이 학교무상급식 이후 공공 먹거리 확대에 대해 높은 의지가 있었으며, 이 단체(정확히 말하자면 이사장)를 그 정책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공공 먹거리 정책은 시장의 당선 이후 숙원사업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기득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과 공조직 내의 태만 등으로 인해 5년째 표류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햇수로 3년 거의 무상으로 선거 관련 일을 하며 금전적으로 궁핍했던 나는 월 250만 원에 기획홍보위원장이라는 오글거리는 직함을 달고, 이 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전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상한 측은지심과 이상적 호기가 발동되었다... 대부분 이런 결정은 이후 후회를 유발한다)
공공 먹거리에 대한 전체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각각 전문가라고 하는 교수, 박사, 전문가 등등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이렇게 글을 쓰면 안 된다. 이런 내용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등등등)
여기서 이들의 말을 더 듣다간 똑같은 결과가 반복될 것 같아, 국내외 공공먹거리 관련 내용을 스스로 찾고 이해하고 그림을 그렸고, 지금 보면 좀 어설프지만 다수가 논의할 수 있을 어느 정도 밑그림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밑그림에도 온갖 딴지를 걸어 댔지만 결국 서울시 내 공공 먹거리 TF를 구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5년 동안 멈췄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5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첫 달 백만 원 남짓 받은 후 단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시민단체에서 사무장을 보는 선배는 5개월째 월급을 못 받는 상황에서 내 월급을 준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서울시 회의비 + 외부 지원 등등으로 지급하기로 했지만 애당초 말이 안 됐다)
본격적으로 TF가 꾸려지기 시작하니, 그 시민단체의 이사장이 나를 불러 TF에는 한 조직에서 한 명만 참석 가능하니 빠지라고 말을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후 인심 쓰는 척하며 공공 먹거리 연구용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일이 그때의 노력과 업무의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이때 나는 이 이사장에게서 인간을 쓰고 버리는 일과 자신의 입신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감명처럼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인성이 받쳐 줘야 하는 것이다.(나의 부족한 인성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그 이사장과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 여러 가지 고위 직책을 역임한 그 이사장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다시 다른 시민단체의 수장을 맡게 되었다. 이후 나에게 연락이 와 자신과 함께하자며 제의가 왔고 당시 거절 후 몇 개월 뒤 함께 하게 되었지만,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라 생각한 그 인성과 감명은 여전했으며 3개월 만에 서로의 길로 갈라졌다.
자신 이외에 남을 하찮게 생각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입신을 위해 필요에 따라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행동 등 시간이 지났음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 깊은 감명은 결국 그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을 절연하게 하였다.
누군가 낮은 혹은 대가 없이 노력하고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사회곳곳에서 이러한 이 이상적인 일들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어느 대학의 연구실에서, 어느 시민단체의 인턴쉽에서, 어느 회사의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계약직 업무에서..
무엇을 하던 절차에 맞게 성과를 낸다면, 그들의 노력을 그만큼 가치가 있지만 그 가치를 평가하는 조직 혹은 인간이 이를 악용한다면 그들의 노력과 시간과 성과는 무의가 된다.
높은 인센티브만으로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없지만, 낮은 혹은 노력과 시간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성과를 낼 수 없다. 왜냐면 대부분 성과를 낸 개인이 아닌 타인이 성과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물론 낮은 보수를 받던 이들이 높은 보수와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다시 변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일을 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다.(자신의 해야 하는 일,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 등등 사전에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사실 월급을 받기 때문에 반복되는 동기부여가 존재한다. 하지만 똑같은 동기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새 인가 무기력을 동반하게 되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조직은 이미 수백 년 동안 반복된 학습을 통해 이를 알고 있으며, 이러한 무기력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상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너스, 성과급, 상여금, 휴가비, 축하비 등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고 매너리즘에 문턱 넘으려 하는 일꾼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게 되면 똑같은 강도의 인센티브 또한 한계에 다다르게 되며 결국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조직은 점점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다양한 달성조건 등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노동자 또한 당연한 듯이 더 편하게 더 적은 노동을 기준으로 더 큰 인센티브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더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노사협상이다.(어디까지나 정규직 범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조직에 한해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조직은 이러한 조건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규모이며,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욱더 열악한 조건이 대부분이다.
자,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모든 사람들이 큰 인센티브와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대가를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금메달을 따는 운동선수는 오로지 금메달을 딴 후의 연금, 유명세, 그리고 더 높아진 월급을 위해 노력할까?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6개월에 걸쳐 스케치하고 조각하고 색칠하던 조각가는 내 작품이 이전 작품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걸까?
동기부여는 금전적이고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대가만으로 가능한 걸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보편적 기준에서는 금전과 사회적 보상이 최선이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러한 보상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보상체계를 바라지도 않는다.
연간 1천 명의 고고 야구선수를 배출한다. 그중 프로직명을 받는 선수는 백 명 남짓이다. (신고선수 포함) 대부분 고등학교 선수는 빠르면 1학년 때부터 자신이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을 알고 있다.
성과와 대가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짧게는 7년 길게는 10년 동안 야구를 해왔음에도 드래프트에 떨어지게 되면 그들의 노력은 무의가 된다.
정말 무의일까?
어떤 선수는 고 3 때 재능에 눈을 뜰 수도 있으며, 어떤 선수는 대학교 혹은 실업야구에서 눈을 뜰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개된 재능의 성과는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일반적으로 평가받는 고3년 동안의 성적으로 평가할 시 이들의 노력은 무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기다리거나 똑같은 기간 동안 노력한 선수의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가능하다면, 인센티브를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가 기간과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태도나 성실성 그리고 의욕이 있다고 한다면 기존 대상보다는 낮은 급여체계(프로야구의 신고선수 개념과 유사) 주더라도 그 사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무꿍의 현재 상태에서는 비웃음 살 일이지만 파트너인 최대표와 하는 얘기가 있다.
추가적으로 인력을 뽑을 때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보다는 차라리 고등학교 졸업생, 그것도 보육원 출신의 인력을 뽑자고 얘기한다.
우리가 우선해서 뽑을 인력을 콘텐츠 기획자로 최대표와 함께 뷰티 관련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인력이다. 기존의 검증된 뷰티 콘텐츠 기획자를 뽑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무꿍의 특성상 기존 뷰티콘텐츠의 노선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검증된 기획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방향성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의견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고정된 선입관이 없이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인력 즉, 고등학교 졸업생 중 어릴 때부터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본 인력을 뽑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급여 및 보상체계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겠지만, 자신이 만든 콘텐츠의 성과로 보상체계를 어느 정도 구축한다면 상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 진행에서는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고려할 때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 성공을 위해선 더 가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관객과 플레이어, 정치인과 유권자 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쌍방 간의 보상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쌍방 간 만족하는 보상체계를 찾는다 하더라도 높은 동기부여를 유도하고 성과를 귀결되지 않는다.
보상체계는 그 사람이 속한 조직, 환경, 인성, 참을성, 노력여부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운동선수처럼 작년 성과를 기준으로 연봉을 반 토막 낸다면 당신은 그 조직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지를?
지금의 ai와 로봇이 만드는 업무체계의 정밀성이 고도화된다면 조직은 더 이상 보상체계를 신경 쓸 필요 없을 것이다. 손님이 많아 평소보다 고생한 식당의 직원에게 성과급을 얼마 줘야 하는지, 역대의 성과를 냈음에도 미래를 위해 재투자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노사 협의 시 얼마를 지켜낼 수 있을지, 충분한 보상을 했음에도 회사가 어려워져 야근을 요청함에도 불만을 파업으로 행동하는 조직원에게 괘씸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왜냐면 동기부여와 인센티브는 사람과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또 다른 소통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저리주저리 긴 글을 썼지만 결국 똑 부러지게 결말을 질 수 없음에 조금은 답답하지만 어차피 세상이라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 말고 종결되는 것은 있지 않기에 약간의 찝찝함을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동기부여는 다양한 방법과 조건과 그 사람의 상태를 고려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를 위해서는 작은 조직(팀단위)을 유지해야 하며 조직원의 상태를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는 슈퍼바이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무꿍이 추구하는 조직 체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높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성과를 취하는 과정을 제공하면 된다.
[첨언]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높은 인센티브가 주어지더라도 결국 반복되는 업무는 매너리즘을 불러일으키며 점점 더 무력하게 만든다.
똑같은 일을 오래 할수록 급여와 보상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금전적 인센티브 외 개인의 성취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지속할 동기는 점점 더 약해지게 된다.
새벽 네시부터 출근해 저녁 12시까지 매일 식당을 하는 어머니가 있다. 똑같은 시간 동안 30년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물론 버는 동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하지만 그 어머니가 하는 일은 변함없이 똑같았다.
이 어머니가 받는 보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지만,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자식들이 성장하고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성취가 없었다면 포기 없는 30년의 시간은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매일 같은 하루를 30년 동안 반복하는 것은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