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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Jan 17. 2024

신의 아이들 - 이승준

네팔 화장터의 아이들

카트만두 동쪽의 파슈파티나트 Pashupatinath. 이곳은 힌두교 최대의 성지이자 사원이며, 죽은 자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이별의 관문이기도 하다. 이곳을 관통해 흘러가는 바그마띠 강은 매일 수많은 시신을 불태운 재와, 살아남은 자의 염원을 담은 꽃잎을 천국으로 실어 나른다.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신의 아이들'은, 바로 이 화장터에서 시신으로 삶을 연명해 가는 집 없는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언젠가 인생이라는 새가
우리의 몸에서 날아가네
신을 생각하세요
신에게 기도하세요
그건 당신 것도 아니고
제 것도 아니랍니다
잠깐 빌려온 것이죠
언젠가 떠나야 해요
어느 날 외롭게 떠나야 합니다
그날을 생각해 보세요

- 사두들의 노래


죽음은 매일같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이 삶만큼 끈질긴 것도 없다. 집도 부모도 없이 화장터를 자기 집 삼아 살아가는 아이들은, 시신에게 보내진 노잣돈을 물속에서 건져 챙기고 시신이 입던 옷을 팔아 생을 연명한다. 시신의 입에 넣은 금을 찾으면 운이 좋은 날. 밤이 되면 개, 원숭이들과 함께 화장터에서 잔다.


시신 옆에서 동전을 건져 올리는 아이들

주인공 엘레스 포우델은 맑고 순수한 눈빛을 지닌 아이. 그는 엄마, 형, 여동생과 함께 아빠의 폭력을 못 이겨 집을 나온다. 하지만 엄마는 술에 절어 정신을 놓아버리고, 형 데이비드는 가족에게 무관심한 채 거리를 떠돈다.


할 수 없이 네 살배기 여동생은 엘레스의 몫이 되고. 자기 한 몸 연명하기조차 힘든 어린 엘레스에게 여동생 뿌자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뿌자의 손을 이끌고 싸구려 밥집으로 향하는 엘레스. 그리고는 땟국물 가득한 얼굴로 날리는 밥알과 누르스름한 달(네팔 카레)을 우석거리며 채워 넣는다.

 

엘레스와 동생 뿌자
어떤 날은 학교에 가고
어떤 날은 소를 돌보러 가요
어딜 가려고 해도 늘 내리막이 있어요
제가 두 살 때 어머니는 떠나버렸죠
우리는 어디에서나 미움을 받아야 해요
바람은 가슴속의 꿈을 날려버린답니다
슬픔이 있어도 난 앞으로 갈 거예요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불을 붙일 거예요

-   화장터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화장터에서 시신을 배웅하는 유족들의 울음은 비통하고 처량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곳엔 늘 노래와 춤이 있다. 화장터에서 행해지는 불의 제사, 아르띠 뿌자도 아름답기만 한데...

   

아르띠 뿌자


어린 나이에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거리에서 담배도 피우고, 본드까지 한다. 근처의 번화가에 구걸하러 나간 형 데이비드는 본드에 취해 몽롱한 눈빛으로 얘기한다.


지금 12살인데 13살에 죽을 거예요.
그냥 죽고 싶어서 죽는 거예요.


10월, 네팔의 가장 큰 명절인 더사인(Dashain)돌아온다. 가엾은 염소들의 목은 뎅겅 뎅겅 잘려서 깔리 신 앞에 바쳐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마냥 행복한 날. 이 날 만큼은 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드를 하며 거리를 방황하던 형 데이비드도 밥을 먹으러 화장터로 돌아온다.


더사인에 밥을 먹는 남매들


어느 때는 요정 같고 어느 때는 무희 같은 뿌자. 그녀를 바라보는 오빠의 시선은 따뜻하다.



화장터를 흐르는 바그마띠는 늘 시신의 재로 부옇지만, 그 아래 천국을 향해 보낸 꽃잎이 떠간다.

고단한 아이들의 염원이 부디 천국에 가 닿았으면...






덧붙이는 말)


2008년에 개봉된 이 다큐멘터리를 2024년 현재 볼 수 있는 방법은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pages/PC_00000021)에 방문하여 시청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사람들이 더 쉽게, 그리고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당시 12살이던 형 데이비드는 지금 살아 있다면, 이미 스물여덟이 넘었을 것입니다.

네팔 카트만두의 사원 계단에 무료하게 앉아 시간을 때우던 백수 청년들처럼이라도 부디 그가 잘 살아있다면 좋겠습니다.

엘레스와 뿌자에게도 행운이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득 기적을 바라봅니다.

그냥 그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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