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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여행을 마치고

발리가 떠오르는 순간들

by 클라우드나인

어떤 여행지를 떠나는 동시에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그리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발리는 떠나는 동시에 그리운, 내가 언젠가 다시 오겠구나를 확신하게 되는 곳이었다.


발리에서의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괌이나 하와이에서는 훨씬 더 럭셔리한 리조트와 서비스가 있었고,

태국에서는 더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마사지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발리에서는 이방인도 원래 있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주는 그 특유의 친절하고 개방적인 문화가 나를 자유롭게 해줬던 것 같다.


내가 더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노출 있는 옷을 입어도 쳐다보지 않고, 타투가 있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 다른 종교를 가져도 그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여지와 일상 속에서 겸손하게 자신들의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언제든 나를 자연 속에 뉘일 수 있는 자연환경까지.


그리고 나에게 워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여러 도시에서 워케이션을 해봤지만, 일과 라이프의 밸런스를 잡는다는 게, 여행다니면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준 도시이다. 눈이 부시게 쨍한 태양 아래로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수영장을 배경삼아 한국으로 타임슬립한 것처럼 몰입해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미련없이 수영복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는 것. 각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다 같이 모여 오늘치 일을 해치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핑이나 마사지 받으러 가는 것. 워케이션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하며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곳이 발리이다.


이런 발리를 떠나와서 서울 한복판에서 왔다 갔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의식을 해야 알아차릴 수 있는, 바쁜 삶을 살다보면 이따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적당히 따사로운 햇볕 아래 선베드에 누워서 책을 읽는 내 모습. 옆에 개미가 왔다 갔다 해도 평소 같으면 질겁했을 일이지만,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유연하게 열려 있는 내 모습. 물에 들어가서 한바탕 자유영도 하고 배를 까뒤집고 누워서 유유히 떠가는 수달처럼 떠있기도 하는 내 모습. 물에서 나와 타월로 몸을 감싸고 기분 좋게 따뜻하고 몸이 마르는 그 느낌. 바로 그 순간이 떠오른다.


어떤 여행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지만, 내가 그 사소한 장면을 이렇게나 인상적으로 담아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 '발리' 속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리를 직접 다녀오고 나서야 왜 발리 덕후들이 있는지 알겠다. 발리를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적어도 나는 공감할 수 있다. 발리의 환경, 문화, 사람이 다 어우러진 그 총체적인 무언가만이 지닐 수 있는 매력, 아우라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발리 여행을 다시 준비하는 지금,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이지만 나는 그 여행 이후에도 발리를 가게 될 것임을 지금부터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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