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raw'라는 단어가 잘 어울려
기분 좋게 따뜻한, 너무 쨍쨍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습해서 땀이 나는 날씨도 아닌, 그런 날이었다. 미리 불러놓은 우버 택시를 타고 뜨라가와자 강 쪽으로 이동하면서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다. 어차피 물 온통 뒤집어 쓸텐데, 머리가 방해가 되면 안되니까.
거의 다 왔나? 생각할 때쯤 창 밖으로 '뜨라가와자' 라고 큼직하게 쓰인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래프팅은 진짜 초등학교 때 아람단(걸스카우트 같은 것) 할 때, 중학교 수련회 정도 갔을 때 해본 게 마지막인데, 발리의 래프팅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보통 한국에서는 래프팅이라고 해봤자, 코스 자체가 짧거나 위험한 자연물이 거의 없어서 시시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스릴 있는 구간조차도 안전에 위험하지 않게 여러 번 검증을 거쳐 만들어진 세련된 코스라고나 할까.
소지품이 젖지 않게 이중 삼중으로 방수백에 넣어서 가이드분이 꼼꼼하게 챙겨준 후에 이제 강가로 내려가라고 했다. 강가로 내려가니 우리 둘, 그리고 가이드 이렇게 총 셋이서 큰 보트를 타고 내려간다고 했다. 우리 둘이서만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 기분도 잠시, '이거 진짜 날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 돌들의 촉감이 두두둑 느껴지는데 물살을 향해 가이드가 보트를 잡아끌었다. 물살을 타기까지 꽤 거리가 있어서 가이드가 노로 거의 지렛대 원리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 보트를 끌었는데, 앉아있는게, 내가 살을 더 빼고 오지 않은 게 미안할 정도였다. 차라리 우리한테도 무슨 역할을 주면 좋겠는데 가이드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급류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물살이 세고 중간 중간 훅 떨어지는 구간도 있어서 나의 모험심과 위험 추구 성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때 또 '미쳤다, 여긴 미친 곳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연물이 진짜 자연 그대로 있어서 위험천만했다. 진짜 래프팅 하다가 림보하듯이 뒤로 머리를 재낀 적은 또 처음이다. 한 번은 머리 박으면 그대로 죽겠구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진짜 위험할 수 있겠는데?' 와 '와 너무 재미있다, 미쳤다'의 생각을 무한반복하며 1시간 가량을 내려왔다. 중간에 가이드가 원숭이 소리가 들리자, 원숭이를 보여준다며 노를 주변 바위에 세게 내리치는 걸 반복하기도 했다. 노로 아무리 내리쳐도 원숭이는 등장하지 않았고, 가이드분과 우리는 살짝 어색한 순간을 맞았지만 휩쓸려오는 급류로 그 순간도 빠르게 흩어졌다.
꽤 긴 코스여서 체감상으로는 1~2시간 정도 래프팅을 한 것 같은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대자연 속에 들어온 느낌이 마치 내가 포카혼타스가 된 것 같았다. 절벽 위에서 노래 부르면 어깨에 새도 앉고, 원숭이랑 너구리가 옆에 쪼르르 달려 올 것 같은 느낌. 인간이 거의 손 대지 않은 대자연 속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덩굴과 나무들 사이로 물살을 타고 빠르게 내려가던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대는 것 같다. 아, 그리고 너무 고군분투하신 우리 가이드분께는 간식과 함께 팁도 두둑히 챙겨드렸다. 다음에 가면 좀 살을 빼서 무게라도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