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추구 100, 위험회피 0
TCI 검사를 해보면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성격적인 측면을 비교해볼 수 있다. 여러 척도가 있고, 나는 대부분이 한쪽으로 치우친 점수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극단의 점수를 가지고 있는 게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척도이다. 자극추구 100, 위험회피 0. 말 그대로 일상적인, 따분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거 발견하고 도전하는 성향인데, 위험을 감지해서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남편에게 결혼할 때 "내가 이거 하난 약속할 수 있어. 넌 누구보다 특별하고 다이나믹한 삶을 살게 될거야"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생각지 못한 선택과 결정으로 놀라게 하면서 스스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타고난 걸 어쩌겠나. 게다가 그렇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도전하면서 은근 실패한 적이 많지 않아 이 성격이 지금까지 강화됐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이다 보니, 헬스나 요가 같은 일상적인 운동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수영, 스노우보드, 다이빙, ATV 같은 액티비티에 가까운 스포츠는 매우 즐기는 편이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운 나는 물을 좋아한다. 물 속에서의 그 자유로운 느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즈니 공주인 '인어공주'가 된 느낌이 든다. 내가 인어공주였다면, 자극추구 100, 위험회피 0이니까 원작과 똑같이 인간되고 싶다고 아빠한테 난리쳤겠지.
스쿠버 다이빙은 수면 근처에서 수영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언제나 어릴 때부터 그려왔던 바닷속 풍경은 맑고 푸른데, 깊이 들어갈 수록 어둡고 알 수 없는 변수들도 많아진다. 동시에 고요해진다. 수신호로만 얘기를 나누고 눈으로만 서로의 기쁨과 흥분을 나누고, 오직 산소통을 통한 호흡 소리만 들린다. 순간 내가 물 속이 아니라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나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물고기와 거북이, 가오리 등을 볼 때면 '쟤네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발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했던 지역은 난파선이 침몰해 있는 '뚤람벤' 지역으로 도심에서는 차로 몇시간 가야 하는 남동부 지역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해상 수송선이었던 USAT Liberty 선박이 1942년 일본 해군 소속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침몰되었고, 1960년 발리 근해 화산 활동으로 인해 침몰 난파선이 뚤람벤 해안으로 밀러들어오면서 지금의 형태가 자리잡았다. 난파선 전체 길이는 120m에 달하고 수중 4m부터 난파선의 흔적이 시작된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엄청 큰 배가 눈앞에 펼쳐진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정확히 분간은 안되지만, 난파선이라는 대상 자체는 자극추구 100의 나를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파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때는 정말 모험하는 탐험가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내 눈에 이 광경을 담고 또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통 체험다이빙을 하게 되면 2회 정도를 하게 된다. 다이빙을 마치고 돌무더기가 가득한 해변가로 올라왔다. 귀가 아프다는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난 연신 신나서 '진짜 너무 좋았어!! 언젠간 꼭 다이빙 자격증을 따서 더 깊이, 더 자유롭게 다이빙할거야'를 반복했다.
다이빙이 끝나고 뚤람벤에 대해 애정이 가득해진 우리는 다이빙샵 직원의 은근한 마케팅에 바로 홀랑 넘어가 뚤람벤 지도가 그려진 티셔츠 하나씩을 커플로 샀다. 티셔츠도 하나씩 사 입으니 진짜 뚤람벤과 유대라도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정신 못차리고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