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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워케이션

영감의 원천이 도처에 있는 풍경

by 클라우드나인

발리에서 일하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서울에서 일할 때는 노트북 앞에 하루종일 앉아있는 시간이 끝나고 저녁이 되어도 나의 피로를 풀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가 어려워 그냥 넷플릭스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시간만 죽이다가 자는 게 대부분이었다. 발리에서는 내 노트북 뒤로 눈이 시리게 파란 수영장 풀이 펼쳐져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해변과 요가원이 있다. 일이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들이 바로 옆에, 곁에 있다. 그러다보니, 일할 때도 일이 끝난 뒤의 휴식이 확실하게 보장된 채로 있는 느낌이라 일하는 동안의 시간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퇴근 후 나의 몸을 충분히 이완하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일상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환경이다.


머리를 말끔히 비워낸 후에는 아침에 다시 일어날 때도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 침대 맞은 편에 있는 커텐을 젖히면 어제와 다름없이 깨끗하게 청소된 수영장 풀이 보이고, 빌라 스텝은 신선한 과일과 팬케이크, 커피를 아침으로 준비해준다. 개미가 책상을 타고 올라오지 않게 조심 하면서 가벼운 아침을 먹고 배경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켠다. 발리의 평화로운 풍경과 다르게 너무 힙한 힙합 음악인가 싶지만, 텐션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런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 필수다. 음악까지 틀고 노트북을 펼치면 오늘 일할 준비 완료다. 중간 중간 계속 핸드폰을 보며 예정된 수업시간과 미팅 시간 등을 놓치지 않도록 체크한다. 발리는 한국과 3시간 밖에 시차가 안나서 시간 조율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런 발리의 일상도 익숙해질 때는 가끔 주변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검색해 짐을 싸서 나간다. 생각보다 발리에서 워케이션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1일권을 끊을 수도 있고, 시간제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인기가 많은 곳은 사람들이 빨리 차기 때문에 오전 시간부터 가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1일권을 끊으면 중간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오거나 마사지를 받고 와도 눈치가 안 보여서 너무 좋다. 나 말고도 발리 곳곳에 이렇게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숨어 있었구나 하는 걸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새삼 느낀다. 발리에서 발리인이 아닌 외국인들끼리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닐까 ㅋㅋ


발리에서의 워케이션은 진정한 일과 일상, 삶의 경계와 균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사실 평소에도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절대적인 시간면에서는 지킨다고 볼 수도 있으나 서울과 발리에서의 워라밸은 '질'적인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서울에서는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집안 일을 돌보고 핸드폰으로 짧은 영상들을 넘기는 데 썼다면, 발리에서는 정말 내가 쉴 수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다시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컨디션,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발리에 워케이션을 오기 전에 여러 컨텐츠를 통해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머릿속에 상상하던 이상적인 워케이션의 모습이 바로 이게 아닐까.


발리에서 돌아와 서울에서의 삶으로 되돌아왔다. 일하는 도중에도 발리에서의 시간이 떠오르면, 그 때의 여유와 삶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지금의 삶에 적용시켜 보려고 노력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위한 아침을 챙겨 먹고 일이 끝나면 핸드폰이 아니라 책을 읽거나 요가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발리에서 내가 느꼈던 그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발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일터인 동시에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서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 내가 서울에서의 바쁘고 치이는 일에 매몰되는 그 때에는, 더 긴 시간을 발리에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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