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조경이 있는 곳
아궁라이 뮤지엄은 이번이 2번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없고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많은 관광객들이 왕궁의 레콩댄스나 몽키 포레스트에 가기 위해 아궁라이 뮤지엄은 일정에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리 우붓에 왔다면 아궁라이 뮤지엄은 꼭 한 번 가보길 추천하는 곳이다.
아궁라이 뮤지엄은 '아궁 라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역사와 배경에 대해서는 방문시 나눠주는 소책자에 상세히 적혀 있으니 내가 설명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평소 미술, 회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궁라이 뮤지엄을 방문하는 데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아궁라이 뮤지엄은 발리의 우붓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아보이는, 엄청 큰 나무들과 다른 세계로 향하는 듯한 사당이 연상되는 작은 문을 지나고 나면 아궁라이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사실 이 뮤지엄의 실내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래서 정말 더울 때 방문하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더위가 방해가 될 수 있다. 워낙 미술, 특히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나지만 아궁라이에서는 작품 자체 하나 하나를 음미하고 달려 있는 설명을 듣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작품들이 많지만 아궁라이 뮤지엄은 장소 자체로서 즐겨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밖의 자연과 건물 안의 작품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그 느낌, 안과 밖이 명확히 나뉘지 않아 밖의 햇살이 안의 작품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특히 아궁라이 뮤지엄은 아름다운 조경이 압권이다. 시작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어디 하나 푸르지 않은 곳이 없다. 건물이 있는 자리와 가끔씩 큰 잉어들이 있는 연못을 제외하고는 온통 푸르른 녹음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이름모를 튼실한 열매들도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나중에 그 열매 이름을 직원에게 물어봐서 찾아봤는데도 한국에는 없는지 잘 나오지 않는 이름이었다.
아궁라이 뮤지엄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서 왔었는데 누군가랑 같이 오면 더 좋겠다 생각이 들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나 혼자 전세 내듯이 보고 있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에 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무들에 가려 그렇게 덥지 않은 정원들을 거닐며 시내에서 동떨어진 섬에 와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관광객이 정말 하나도 없어서 뮤지엄을 보는 내내 한 두 사람 만났을까, 오히려 직원들이 관광객보다 많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끼리만 전세를 내고 이 공간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우붓이 스미냑, 짱구 이런 도심 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지역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계속되는 교통체증과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들로 어지럽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활기참이 있지만서도 가끔씩은 머리를 비워주는 시간도 여행 중에 필요하다. 아궁라이 뮤지엄은 그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세계로 들어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휴식 공간이었다.
아궁라이 뮤지엄 입장 티켓에는 무료 카페 음료권이 포함되어 있다. 출구 직전에 야외와 이어진 카페 공간이 작게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만 또 카페 전체를 점령하고 그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모기가 다리를 물어 성가시게 해서 신경이 좀 쓰였던 거 말고는 그늘 아래 앉아 아이스커피와 티를 마시면서 엄마, 아빠와 다시 뙤양볕의 거리로 나가기 전에 취하는 휴식이 정말 달콤했다.
아궁라이 뮤지엄을 들렀다가 오후에는 스냅 사진을 찍으러 가는 일정이었는데, 스냅 사진 찍는 곳을 이 아궁라이 뮤지엄으로 했어도 너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공간은 그 특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뻔한 표현이지만 '자연 속의 휴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이 곳 아궁라이 뮤지엄, ARMA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