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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자유

반마드(?)의 삶

by 클라우드나인

아침에 일어나 추운 바깥으로 향하는 남편에게 "잘 다녀와" 라고 손을 흔들면서, 닫히는 문 사이로 찬 바람이 쌩 들어올 때마다 나는 디지털 노마드라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적어도 이번 생에는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근무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렇게 단호하게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고수하는 나도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아찔하다. 잠과 관련해 어려움이 있는 나는 9 to 6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울며 불며 중, 고등학교를 겨우 마쳤는데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니... 지옥이었다. 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나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8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이 어려웠다. 5분만 지나도 머릿속에 딴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들은 뭐하나 기웃거리고 싶고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디지털 노마드인 건 아니다. 반 디지털 노마드, 줄여서 반마드? 정도 ㅎㅎ 여전히 내가 속한 영역에서는 오프라인으로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존재하고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온라인 세상에만 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발리에 있다. 발리에서 줌 화상 통화로 일을 하고, 글을 쓴다. 반마드(?)인 나지만 회사 다닐 때와 비교했을 때 나는 '유동성'을 얻었다. 혹자는 자유를 얻었다고도 할텐데, 사실 디지털 노마드(대부분 프리랜서)의 삶이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완전한 자유'라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거의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정말 자유롭다. 이렇게 풀장을 앞에 두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잠옷 차림으로 일을 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신기하고 어색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이따 일이 끝나면 서핑을 할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마사지를 받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처럼 더이상 물리적 공간에 얽메이지 않고 정말 '일'만 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선택에 있어 자유롭다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최고 장점일 것이다.


발리에서의 워케이션은 앞으로 내가 살게 될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이 가진 가능성을 엿본 느낌이다. 완벽히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기엔 나도 준비가 덜 됐고, 이 세상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 같지만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진짜 디지털 노마드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땐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디지털 노마드로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방식이 바뀌는 것 뿐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어딘가에 메여 있지 않고, 다양한 곳을 유목민처럼 돌아다니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 발리에서는 내가 디지털 노마드로서 쭉 산다면, 이런 모습으로 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했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상황 없이 내가 온전히 하루 동안 할 일을 정하고 자율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자유. 발리에서의 자유는 내게 그런 '통제감'을 느끼게 했다. 하루를 조각 조각 다채로운 색으로, 일과 여가를 적절히 배합해 채우는 재미를 알게 됐다.


서울로 돌아가면 내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카카오톡과 각종 인터넷 창들의 모습은 똑같은데, 그 화면 뒤로 펼쳐지는 배경이 달라질 거다. 오른쪽은 냉장고가 왼쪽에는 거실이 있고, 뒤로는 화장실이 보이는 그런 집의 익숙한 풍경이. 떄로는 그 배경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으로 아늑하고 소란스러운 카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 점차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일과 여가를 적절하게 섞어서 꽉 채운 날들을 보내는 그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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