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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 도움1도 없이 결혼하기-3

웨딩 베뉴, 식장 정하기

by 클라우드나인

웨딩 공간, 베뉴는 결혼식 과정에서 거의 제일 중요한 리스트들 중 하나이다. 공간은 절대적인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며, 때로는 시간을 압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굳이 주의를 기울여 보거나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공간은 온몸으로 경험된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공간은 우리 결혼식의 전체적인 컨셉과 더 나아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기도 한다. 아이덴티티까지? 너무 간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혼식장을 보면 이 신랑 신부가 어떤 걸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맛있는 밥, 야외 공간, 아름다운 홀, 편리한 주차까지. 가끔 보면 자신들만 생각하고 하객들은 하나도 배려하지 않은 부부들도 있다. 그러면 진짜 결혼식 가면서도 조금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사실 나한테 어떠한 제약(돈, 지역 등)도 없이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면 정말 큰 현대 미술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몇년 전 혼자 갔던 스페인 여행에서 크고 시원시원한 사각형 구조로 이루어진 현대미술관을 들렀다. 그땐 남편이랑 사귀기도 한참 전인데, 그때 처음으로 '나중에 결혼하면 여기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계단에서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내려오고 사람들은 정해진 자리에 빽빽하게 앉아 있기 보다는 자유롭게 배치된 테이블에 앉거나 서서 우리를 본다. 미술관의 많은 전시실은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큐레이션되어 있다. 결혼식은 반나절 이상 여러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하는 파티 같은 컨텐츠로 짜여져 있다. 왠만하면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지만 결혼식은 우리 둘만이 참여하는 이벤트가 아니다보니 내 상상의 현실버전을 만들어야 했다. 현실 버전에서 이것 저것 타협하다 보면 처음의 기획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처음 기획에서 핵심을 담당하는 부분은 탄탄하고 확고하게 정해야 한다. 내 상상력에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정해놓는 거다.


나의 경우에는 '자유로움', '영감', '디즈니(동화)'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냥 억지로 의자에 앉아서 억지로 관심도 없는 관련자들의 말을 듣고 끝나자마자 우르르 나가는 게 싫다. 적어도 내 결혼식에 와서 몇시간을 쓰게 할거면 큰 울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 갈 때 작은 영감이나 재미, 행복함을 들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자유로움'은 내게 정말 중요한 키워드다. 진보적인(?) 학문을 대학교 때부터 공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정해져 있는 규칙, 전형적인 틀을 내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시선으로 강요 받는 것에 거의 알러지 반응이 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맘에 들지도 않는데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들을 다 바꾸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 취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디즈니'였다. 웅장하고 우아한 분위기보다는 동화스러운 아가자기함과 사랑스러움이 결혼식에 넘쳐 흐르길 바랬다. 이런 키워드들이 결혼식에 녹아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연애를 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갈건지 와준 하객들에게 자연스럽고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무엇보다 틀에 박힌 모든 전형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에게 야외 공간은 필수였다. 실내 웨딩홀은 변화를 주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콘텐츠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물론 난 콘텐츠도 완벽하게 짤 거지만 그 콘텐츠가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다. 야외 베뉴, 그리고 야외 느낌이 나는 베뉴들은 다 돌아다녔다. 사진으로 볼 때는 너무 아름다운 공간들도 실제 가보면 나의 기대와 다르다. 고려해야 될 요소들 중에서도 아쉽게도 하나씩 애매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전부 야외로 이루어진 베뉴를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큰 변수였다. 야외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든 부부들은 이 부분을 용감하게 감수하고 결정한 거다. 그 큰 변수를 안고 결정하는 게 어려웠던 나는 야외 공간의 푸르름과 실내 공간의 장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결국 나의 상상력을 100%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최대한 비슷한 장소를 찾았다. 야외 공간을 이용할 수 있지만 실제 식은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반반 공간을 찾았다.


공간을 찾고 나면 가장 큰 결정이 끝난 거다. 그 다음 선택들은 다 이 공간을 바탕으로 짜여질 수 있다. 가장 기초가 되는 베이스 단계를 마친거다. 공간에 맞는 사진 디스플레이를 하고, 음악을 고르고, 꽃과 풍선 장식을 고르는 등 말이다. 이렇게 가장 기초가 되는 게 공간이기 때문에,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 이후로 식장 예약이 더 힘들어져서 1년도 전에 웨딩 베뉴를 정한다고 하더라. 보통 1년 전에 모든 식장의 예약 일정이 오픈되니 이때 부지런히 가보는 것이 좋다. 보통 발품 팔아 뭔가를 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 나지만 웨딩 공간의 경우 정말 사진과 실제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 가서 걸어봐야 한다. 그렇게 내가 정한 장소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를 1년 동안 상상하고 조금씩 실현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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