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사진 촬영
돌이켜 보면 결혼 준비 과정에서 가장 좋았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수없이 펼쳐 본 순간이 '웨딩 촬영'이다. 웨딩 촬영 전에는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 때 찍었던 촬영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 후부터는 가족들이랑, 남편이랑 더 많이 우리의 모습을 남기게 되었다.
웨딩 촬영을 할 작가님 선정부터 기준은 확실했다. 내가 생각한 컨셉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해줄 수 있는 분, 만들어진 인위적인 느낌의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우리의 모습을 담아줄 수 있는 분이어야 했다. 내가 보통 웨딩사진들 중에 제일 안 좋아하는 게 만들어진 듯한, 의도가 너무 대놓고 보이는 인위적인 사진들이다. 평소엔 가지도 않을 것 같은 웅장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내 컨셉은 디즈니의 '마법에 걸린(빠진) 사랑'이라는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원래 애니메이션 만화 속에 살던 주인공들이 실제 현실에 오게 되면서 겪는 상황들을 다룬 영화인데, 나의 디즈니 사랑을 현실 감각에 맞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디즈니 커플이 실제 현실로 나왔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컨셉에 맞는 드레스들을 따로 따로 빌리고 여기에 적합한 부케, 소품 등도 일일히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촬영 장소도 우리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공간들로 잡았다. 이런 내용을 담아 작가님께 미리 컨셉 ppt를 만들어 전달드렸다.
내가 혼자 그려본 컨셉과 일련의 준비들이 촬영에 100% 반영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촬영에 임해 이끄는대로 끌려다닌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작가님이지만, 이 촬영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은 우리가 된다.
당시에 남편은 운전을 못해서 내가 드레스를 입고 운전까지 하면서 다녀야 했는데 그것 또한 기억에 남는 추억이다. 우리는 잠깐의 실내 촬영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고, 한강 대교에 가고, 지하 터널을 걸었다. 옷이나 머리 매무새를 만져주는 이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옷도 차 안에서 갈아 입고 하다보니 땀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중간에 남편의 부토니에도 사라졌다. 내 부케에서 꽃을 뽑아 남편의 부토니에를 즉석에서 만들고 우리끼리 입다보니 옷도 좀 엉성하게 입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5~6시간 동안 서로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작가님이 시켜서ㅎㅎ) 간단한 춤 동작을 하고 불꽃놀이를 하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렇게 기록했다. 지금도 남편과 손을 잡고 그 골목을 누비던, 남의 집 앞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는 척 연기하며 사진을 찍던 그 시간과 공기가 떠오른다. 혼자 했으면 어색하고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어려웠겠지만 누구보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남편과 함께 했기에 그 언제보다 나다운 웃음을 보일 수 있었다.
나중에 사진을 받아보고 너무 잇몸 공주인 내가 아쉽긴 했지만 ㅋㅋ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사진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평소 서로에게 짓는 장난기 어린 표정과 이를 드러내고 웃는 미소를 보면서, '나한테 저런 웃음이 있었나? 내 웃음을 보면 저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남편과 사소한 이유로 다투거나 현실이 너무 평탄하고 무난하다고 여겨져 지루함이 찾아올 때면 웨딩 촬영날의 사진을 꺼내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을 선택했고 함께 이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는지 다시 떠올린다.
우리의 성공적인 웨딩 촬영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득 엄마 아빠의 웨딩 촬영도 궁금해졌다. 예전에 사진첩을넘기다가 본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두꺼운 앨범을 붙박이장 맨 윗칸에서 꺼내 한 장씩 살펴본다. 엄마가 너무 앳되 보인다. 내가 결혼할 때 나이도 요즘 치고는 어린 편이라고 했는데 그때의 나보다도 5살이나 어리다.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망설이다 수줍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활짝 웃으며 부담스럽게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요즘 장안의 화제인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이가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었고 아빠는 웬만하면 남자들이 선택하지 않을 올 화이트 정장을 입고 있다. 당시에는 우리들처럼 결혼식 몇달 전에 촬영하는 게 아니라 결혼식 당일 일찍부터 촬영을 하고 바로 식장에 갔다고 했다. 지금보다 훨씬 빡센 일정이겠다 싶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내 얼굴이 보인다. 내 사진 몇장에서도 엄마가 그대로 있어서 닭살이 돋았는데 정말 커갈수록 더 엄마를 닮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촬영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물어보면 바쁘고 정신 없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하겠지만 엄마 아빠도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을 거다. 한껏 꾸며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남들 앞에서 어색하게 포즈를 잡으려니 민망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내 옆에 있는 사람한테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엄마 아빠의 얼굴 위로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우리의 결혼 생활도 이 웨딩 사진 속 환한 미소와 장난기 어린 눈처럼 다이나믹하고 행복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