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티어는 다르다...유재석 & 강호동

by mulgae


지금은 예능의 흐름이 유튜브 채널로 옮겨갔지만 한때 방송가에서는 유재석, 혹은 강호동을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렸다. 물론 이들이 출연한다고 시청률과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든 초반 기세가 중요한데 예능계 쌍두마차인 유재석, 혹은 강호동을 잡았을 경우 기세에서 우위를 선점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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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9-15 185558.jpg 2014년 2월 28일 보도한 유재석과 강호동의 신규 예능프로그램 출연 소식. 같은날 연이어 톱스타들의 소식을 전했던 이때가 기자생활의 전성기였다.


지금은 예능계 대표적인 스타PD인 김태호PD가 유재석의 전화번호를 받기 위해 ‘무한도전’팀에 합류한 것처럼 대부분의 기자들도 톱스타인 유재석과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그가 선배 기자들과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게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유재석 매니저를 그만뒀지만 유재석과 꽤 오랜 시간 일을 같이 했던 N모 매니저를 구워삶았다. 그는 지금도 나의 절친 취재원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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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유재석과의 만남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매주 ‘놀러와’와 ‘해피투게더’를 진행했다. 당시 일산 MBC 제작센터에서 ‘놀러와’ 녹화가 있던 날, 매니저의 허락을 받은 뒤 대기실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저 XX뉴스 조물개 기자입니다.”

“오! 조물개 기자님! 늘 기사 잘 읽고 있습니다.”


그가 내 기사를 잘 읽는지 안 읽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중요한 건 유재석은 방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색하지 않게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점은 사회생활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 그리고 상대에게 진심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가 왜 톱티어가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뒤 종종 ‘놀러와’ 대기실에 놀러갔다. 대개 톱스타일수록 단독 대기실을 주곤 하는데 유재석은 은지원 등 ‘놀러와’ 일부 출연진과 함께 대기실을 사용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대기하며 수다 떨 사람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 그는 만날 때마다 치아가 훤히 드러나는 미소로 반겼다.


자주 얼굴을 접하다 보니 서로의 신상명세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 당시 30대 미혼이었던 내게 그는 종종 “조기자, 얼른 시집가, 내가 잘 나갈 때 결혼식 사회 봐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주변인들 결혼식 사회는 유재석의 또 다른 봉사활동 중 하나라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다. 연예인들이야 값비싼 선물로 고마움을 표하곤 하지만 실상 일반인들이 결혼식 사회자로 유재석을 모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톱스타인 그에게 대체 사례비를 얼마를 지급해야 할까!) 그는 PD나 스태프, 기자들의 결혼식에 무료로 사회를 보곤 했다. 아쉽게도 결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 ‘유재석 사회’ 카드는 사용하지 못했다.


KakaoTalk_20250915_184500007.jpg 고인물인 우리테이블엔 유재석과 안면있는 기자들이 많았다
KakaoTalk_20250915_184523446.jpg 고맙게도 악수까지 해주고 가는 유느님


2019년 유재석이 ‘놀면뭐하니’의 부캐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며 화려한 데뷔(?) 기자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좀처럼 인터뷰, 간담회를 하지않는 유재석이다 보니 거짓말 안하고 100여개 매체 기자(촬영 기자 제외, 취재기자만 모인 숫자로는 엄청난 취재진이 몰렸다)들이 몰렸다. 종합지, 스포츠지, 경제지, 온라인 매체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역시 유재석은 노련했다. 그 무렵 내 또래 MBC 출입 기자들은 ‘고인물’이 됐는데 그는 ‘고인물’이든 ‘뉴비기자’든 누구에게나 깍듯하고 정중했다. 특히 모든 기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힘주어 부르며 소통하려 했다. 흡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의 한 대목 같았다. 보통 기자가 그 정도 몰리면 시간 때문에 단체 사진을 찍고 헤어지지만 그는 그 모든 사람과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줬다. 치아를 드러내는 특유의 환한 미소와 함께.

KakaoTalk_20250915_184427410.jpg 아마도 첫 질문을 던졌고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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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날 말많은 유튜브 ‘가세연’에서 기자간담회 전날 유재석과 ‘놀면뭐하니’ 관련 음해성 방송을 내기도 했다. 그들은 이 기자간담회가 추문을 가리기 위해 급조된 것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상식적으로 100여 명의 기자들이 한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장소를 대관하는 것부터가 시일이 걸리는 일이다. 당시 취재진은 방송을 의식, 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유재석 자신이 이를 언급하며 위기를 타파했다. 그는 “(가세연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조심스럽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리가 난 김에 말씀드린다”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날 행사를 마친 뒤 유재석은 나를 비롯한 안면 있는 기자들과 잠시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는 “사실 나는 기자님들 보면 엄청 떨린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심지어 오늘은 사람도 많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노련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그가 왜 지금까지 톱티어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훗날 유희열이 표절 논란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그를 사석에서 따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유희열은 내게 “지금 나한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유재석과 효리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게 돌을 던졌을 때 유재석은 내 옆에 있어줬고 효리는 나와 계약을 해줬다. 두 사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유산슬.jpg 모든 기자 한명 한명과 사진을 찍어줬다. 팔짱은 허락받고 꼈습니다.

상대적으로 강호동과는 유재석만큼 가까워지지 못했다. 과거 KBS ‘1박2일’ 때 강원도 서태지흉가 체험 때 만난 뒤 몇차례 대기실에서 인사하곤 했지만 유재석만큼 친밀해지진 못해 안타깝다. 하지만 내가 그는 언제나 내게 “기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곤 했다. 늘 자신을 낮추는 화법을 사용했다.


강호동과 절친한 여운혁PD(그는 나와 절친하다)는 그에 대해 “호동이가 머리 나쁜거 같아? 운동선수들은 머리가 나쁘면 톱이 되지 못해”라고 말하곤 했다. 여PD의 말처럼 강호동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화법으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만들곤 했다.(상당히 고단수다) 기자가 난처한 질문을 던질 때 빠져나가기 좋은 최고의 화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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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내가 속한 매체의 선배 기자가 강호동의 탈세 의혹에 대해 단독보도했다. 내가 직접 보도한건 아니지만 내가 속한 매체 기자가 이 기사를 썼기 때문에 강호동과 더 가까워지지 못했다. 강호동은 이 사건으로 잠정은퇴를 선언하고 일정 시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요즘 연예인들은 ‘세무조사상 착오’라는 한마디로 탈세 사건을 빠져나오곤 하는데 ‘천하장사’출신으로 자존심을 최고의 기치로 내세운 강호동이다보니 (그리고 당시 정말 톱스타기도 했다) 이런 흠집을 더욱 참기 어려워하는 듯 했다.


PD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의 손을 잡고 싶어하듯 기자들도 이들의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하고 싶어한다. 나는 2014년 2월 28일, 유재석과 강호동의 신규 예능 프로그램 출연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바 있다. 내가 보도한 두 뉴스가 나란히 네이버 연예면 메인 화면을 장식했다. 이때는 어깨가 좀 으쓱해지기도 했다.


강호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의리’다. 그는 고교 씨름부 시절부터 함께 했던 박태현 현 SM C&C 대표와 무려 40여년 넘게 동행하고 있다. MBC ‘천생연분’ 시절부터 함께 한 여운혁PD를 비롯한 옛 인연들과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 비록 지금은 위상이 예년만 못하지만 이런 덕목이 그가 톱스타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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