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를 졸업했다. 우리 과에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나운서 준비 모임'이 있었다. 주로 강남, 서초,송파구에 거주하고 외모가 빼어난 친구들이 아나운서를 준비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 과 정원 40명 중 1/4정도가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
아나운서나 기자나 언론고시를 준비하는건 매 한가지다. 다만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유난히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올라오면 당장 피부과에 달려가는건 예사였다. 방학 뒤에 눈이 커졌다든가, 치아가 유난히 하얘졌거나, 콧대가 오똑해지는 식으로 '튜닝'을 거친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동기들 중 목포 출신 친구가 고향인 목포MBC에, 방송반이었던 친구가 원주 MBC 아나운서로 취업했다. 과에서 늘 수석을 거머쥐며 복수전공에 조기졸업까지 했고, 이런 '튜닝' 열풍에 전혀 동참하지 않은 채 '순정' 마스크를 고수했던 또다른 친구는 KBS 32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이지애 아나운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쨌든 대학시절 유난스러웠던 친구들의 아나운서 시험준비를 지켜보며 아나운서는 나와 다른 별세계의 사람들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실제로 출입처에서 만난 대다수 아나운서들은 몹시 정중했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 마치 내가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전혜진 부부가 된 것 마냥 자연스럽게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됐다.
최현정 전 MBC 아나운서는 기상캐스터 시절부터 팬이 많았다. 당시 기상캐스터 직종이 큰 인기를 얻을 무렵이라 단아하고 우아한 외모에 진행까지 깔끔했던 최 아나운서의 인기가 상당했다. 주변에 기자를 준비하던 숱한 형제님들이 최 아나운서를 이상형으로 꼽곤 했다.
그도 늦깎이 입사자다. 원주 MBC 아나운서 출신인 그는 2004년 서울 MBC 본사 기상캐스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상파 공채 아나운서보다 수명이 짧았던 기상캐스터들은 방송경력을 등에 업고 연예계로 진출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쉬운 길을 놓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1년 뒤인 2005년 MBC 공채 시험에 응시해 신입 아나운서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미 원주에서 아나운서로, 또 기상캐스터로 경력을 쌓았던 만큼 적지 않은 나이인 27세에 입사했다. 한 기수 윗 선배인 서현진 아나운서가 최 아나운서보다 1살 어렸다. 아마 신입 사원 시절 무수히 속상한 밤을 지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백조의 화려함 뒤에는 수면 아래 무수한 발차기가 있었던 것처럼 최 아나운서 역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늦깎이로 입사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방송생활을 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해 대형 영어행사의 진행을 종종 도맡았다.
MBC '섹션TV연예통신'을 연출한 노창곡PD가 들려준 최현정 아나운서의 에피소드는 취재원에 대한 그의 진정성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한국에 톰 크루즈가 영화 홍보 차 내한했다. 각종 매체들이 톰 크루즈와 인터뷰를 위해 줄을 섰다. 당시 최 아나운서는 신입 아나운서들이라면 한번쯤 거치는 섹션TV연예통신’의 리포터였다. 하지만 그는 작가가 써준 대본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톰 크루즈가 내한한다는 소식에 2주에 걸쳐 밤 새 톰 크루즈에 대한 모든 영문 자료를 찾아 습득했다. 이를테면 톰 크루즈가 고교 졸업 파티의 댄스파티에서 누구와 춤을 췄다는 아주 사소한 자료까지 확보한 뒤 역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천편일률적인 질문들 가운데 자신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드러낸 한국 여성 아나운서에게 톰 크루즈 역시 감명 받은 듯 했다. 그는 수많은 매체 중 ‘섹션TV연예통신’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의 리포터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어진 업무를 대하는 최 아나운서의 진심이 느껴진 에피소드였다. 나는 최 아나운서의 이같은 활약을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875275
MBC가 두차례 파업을 거치는 동안 우연히 절친한 MBC 기자 소개로 최현정 아나운서의 근황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이후 한두 차례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쌍둥이의 엄마가 됐고, 그렇게 힘들게 입사한 MBC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심리학 석사를 받았다. 종종 SNS를 통해 그의 삶을 지켜보곤 하던 2021년의 어느날, 반가운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에세이를 출간했다고 한다.
'유일한, 평범'이란 제목의 책 속에는 별처럼 빛나던 아나운서 자리를 힘겹게 박차고 나온 과정,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된 뒤 느낀 박탈감, 그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 그 어떤 고통보다 힘겨웠던 난임의 시간, 끝나지 않는 육아의 세계까지..곳곳에서 단단하고 강인한 최 아나운서의 성품이 묻어났다.
회사를 그만뒀으니 더이상 아나운서가 아닌데, 방송을 하지 않으니 '방송인'이라는 호칭도 적합하지 않다며 오롯이 '최현정'으로 불리길 소망한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자신이 '영업중'이라고 불 켜둔 텅빈 식당같다는 표현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살면서 느낄법한 박탈감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는 책 속에서도 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이듬해 우연히 동네 스타벅스에서 다시금 최현정 아나운서를 만났다.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그는 우리 동네 청소년수련센터에서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나서서 말하기보다 다정 다감하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최 아나운서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제2의 직업이었다.
최아나운서는 내게 책을 선물하며 전문에 '피 색깔부터 다를 것 같은 사람'이라고 적었다. 맞다. 아마 그의 피가 분홍색이라면 내 피는 짙은 자주색일 것이다. 그렇지만, 치열하게 뜨거웠고 덤벙대고 어리숙했던 20대와 30대를 지나 이제 어느덧 40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동년배 여성으로 상담과 작가라는 꿈을 가진 최 아나운서의 인생 2막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