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못 되어도 ‘기레기’는 되지 말자”
‘기레기’.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합성어로 기자를 비하하는 신조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공익성에 부합하지 않는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때로 취재진에게 터무니없는 금품을 요구하고, 검증되지 않은 자료로 선동하거나 날조하는 기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언론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훈련받지 않은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욕먹는 기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2016년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그동안 기자들 때문에 시달렸던 민심도 폭발했다. 특히 여론이 민감하고 다툼이 첨예한 정치권과 연예계에서 ‘기레기’라는 표현이 비일비재해졌다.
개인적으로 기자가 스스로 ‘기레기’라고 비하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긍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가끔 동료 기자인데도 “저러니 ‘기레기 소리’ 듣지”라고 혀를 끌끌 차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인기 밴드의 콘서트 뒤 대기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밴드는 매 번 공연을 마친 뒤 대기실에서 관계자들과 ‘미트 앤 그리트’(meet & greet)를 가지곤 했다. 데뷔 초 어려움을 많이 겪은 팀이기에 무명 시절부터 자신들을 지켜본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다.
초반에는 그냥 대기실에 가서 덕담 한마디, 사진 한 장 찍다 삼삼오오 모인 관계자들과 수다를 떨곤 했는데 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기실 밖에서 길게 줄을 서게 됐다.
그날도 이들의 대기실은 분주했다. 인기 가수, 배우, 유튜버,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제작진, 유명 작사가 등등등...음악 관계자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나는 일찌감치 줄을 섰다. 고등학교 선배인 유명 작사가 언니도 우리 일행과 함께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 일행 중 유난히 늦게 대기실에 나타난 한 관계자가 타사 기자인 A와 뒤늦게 대기실에 들어왔다. 나는 얼른 그녀를 불렀다. 문제는 그녀와 함께 들어온 A였다. A는 계속 우리 일행에게 자신을 끼워달라 요구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50여 명 정도가 길게 줄을 선 상태였다. 우리 뒤쪽에도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군소리없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들 중에는 음악계에서 존경받는 명망있는 감독님도 계셨다. 우리 모두 “당신(A)을 껴주는건 무리가 있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A는 “XXX(유명 작사가) 때문에 일찍 들어가는 거야? 뭐야? 왜 매니저는 내 전화를 안 받아?”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했다. 당시 상황은 ‘유명세’와도 상관없고, 기자나 PD라는 직업도 상관없이 줄을 선 순서대로였다. 황당했다.
추후 늦은 관계자에게 “어디 갔기에 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그녀는 “A가 자꾸 나를 따라와서 따돌리느라 그랬다”며 “우리가 갈 때 보니 A가 매니저를 달달 볶고 있더라”고 말했다. ‘미트 앤 그리트’ 초청장을 받지 못한 A가 우리 측 관계자들을 따라 들어온 모양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A는 출입처에서도 늘 말이 나오곤 했다. 새치기 요구가 금품을 요구하거나 팩트가 아닌 사견을 토대로 황당한 기사를 쓸 만큼 악의적이진 않지만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그녀가 ‘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적 권위를 이용해 타인들에게 소소하게 불쾌함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명 정치인이 참석하는 콘서트를 보고 싶다고 해서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더니 정치인과 인사만 나눈 뒤 콘서트는 관람 안 한 채 돌아가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그 관계자는 A가 기자이기 때문에 소극장에서 가장 좋은 정중앙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 자리를 비운 채 공연을 올려 몹시 속상했다 한다.
해외 출장 때도 남들이 바쁘게 취재할 때 홀로 쇼핑을 한 뒤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워딩을 그냥 토스 받는 얌체 짓을 서슴치 않아 원성이 자자했다. 나는 드라마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속 명은원을 보며 A를 떠올리기도 했다.
A뿐만 아니다. B는 악명높은 기자였다. 그는 자신이 요구하는 걸 취재진이 들어주지 않을 경우 사소한 트집을 잡아 그 회사 배우나 가수, 혹은 방송 제작진을 묵사발로 만드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B와 함께 일한 한 후배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네거티브 기사를 잘 못 쓰는 편이다. 이 후배는 “B가 어떻게 하면 취재진을 굴복시키는지 방법을 전수하려 해 곤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취재진과 ‘밀당’을 위한 ‘조지기’ 비법이 전수되곤 한다. 막내 때 내게 이런 기술을 전수한 선배는 “기자 개인의 감정만으로 조지는 기사를 쓰면 독자도 다 알게 된다. 당장은 화가 나도 꾹 참고 팩트를 확실히 취재해 취재원이 꼼짝 못 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조지는 기사는 더 공들여 취재해야 하기에 어렵다”고 가르쳤다.
또한 네거티브한 ‘조지는’ 기사들은 언론사 행사 등에 협조가 미미한 취재진과 ‘밀당’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게 연예계이기에 자신의 칼을 함부로 휘둘러선 안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B를 비롯한 몇몇 기자들은 매니저가 자신에게 불손하거나,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기사를 쓰곤 했다.
C 매체의 경우 아예 취재진 ‘길들이기’ 차원에서 모든 기자들이 네거티브한 기사만 써 한때 연예매니지먼트협회, 연예제작자협회 등에서도 말이 나오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C매체가 ‘조지는’ 기사를 쓸수록 그들에게 협찬금을 지원하는 기획사가 늘어났고 그들의 트래픽도 증가했다. 대중은 연예인의 나쁜 면만 부각하는걸 원하는걸까. 네거티브 기사로 취재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걸까. 가끔 이럴 때 현타가 오곤 한다.
지금은 연예계를 떠난 D는 식사 자리에서 취재원에게 “왜 탕수육을 안 시켜줘요”라고 했다 찌라시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기자와 취재원의 식사는 웬만한 회사원 월급으로 가기 힘든 좋은 곳에서 먹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보가 오가는 자리이기에 조용하게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다 보니 더욱 그럴 때가 많다. 하지만 탕수육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기자를 처음 만난 사람은 한 명의 기자의 태도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집단에 어떤 민폐를 끼치는지, 돌아봐야 한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사람은 못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 제발 사람은 못 되어도 ‘기레기’는 되지 맙시다. 동료 선후배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