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20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다녀오다

내가 록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이유

by mulgae



처음 록페스티벌에 발을 디딘 게 라디오헤드가 헤드라이너로 출연한 2012년 지산록페스티벌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에게 '록페스티벌'의 이미지는 우중 뻘밭이 된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과 뮤즈와 '무한도전'이 맞붙은 2010년 지산록페스티벌 정도였다. 하지만 2012년 라디오헤드의 무대는 이후 나의 여름을 바꿔놓았다.


이미 들국화로 예열된 관객들은 라디오헤드의 등장을 뜨겁게 환호했다. 라디오헤드하면 creep, High and dry, No surprise 정도 밖에 몰랐던 팝린이로서는 그날의 경험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정된 80분보다 50분 이상 공연을 쏟아낸 (심지어 반 이상 알지 못했던 노래들인데) 라디오헤드의 무대는 “마, 이 정도는 돼야 록페스티벌이지”라는 선언같았다. 그 해 면허를 따고 첫 차(구형 코란도)를 사자마자 신나서 지산리조트에 차를 가져갔는데 출차할 때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가까스로 새벽에 출발했다. 설상가상 어두컴컴한 국도에서 차가 고장나 시속 40KM로 질질 끌며 새벽 4시에 간신히 집에 온 기억도 선명하다.


그 이후로 매년 나의 여름은 록페스티벌과 함께였다. CJ ENM이 지산리조트와 분쟁으로 안산으로 밸리록페스티벌을 이전한 뒤 뻘밭에서 모기떼에 물린 기억, 이래저래 욕먹다 레드핫칠리페퍼스와 함께 돌아온 지산리조트의 쾌적한 환경에 함박웃음을 짓고 페스티벌 프레스룸에서 라면 한그릇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것도 이제는 다 추억이 됐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은 딱 10년 전인 2015년부터 출석하기 시작했다. 펜타포트가 지산록페스티벌보다 더 더울 때 열렸고, 이미 지산에서 무더위를 경험했기에 더위에 취약한 이로서 펜타포트는 살짝 망설여졌던 출입처였다. 2015년에는 2014년 사망한 신해철의 트리뷰트 무대가 마련됐다는 얘기에 처음으로 송도를 방문했다. 아마 그해, 메인 헤드라이너가 서태지였는데 전날 너무 더웠다고 안 간 1인...한참 젊었는데 왜 이렇게 감이 없었는지...>< 그때의 나는 욕먹어 쌌다.


당시의 펜타포트는 달빛축제공원의 잘 관리된 환경과 상대적으로 적은 관객 때문에 상당히 쾌적하게 즐길 수 있었다. 프레스룸에는 얼굴만 디밀고 그늘에 돗자리깔고 누워 “니나노”를 외치며 음악감상을 하곤 했다.


한동안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밸리록페스티벌과 함께 여름 록페스티벌 3파전이 치열하게 열렸지만 현대카드가 소리소문없이 발을 빼고 2017년 시규어로스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밸리록페스티벌이 더 이상 운영하지 않으면서 수도권지역 여름 록페스티벌은 최약체로 평가받던 펜타포트 하나만 남게 됐다. 역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진리였다.


코로나 때도 온라인 중계로 이어갔던 펜타포트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관객 수가 증가했다. 초반에만 해도 잔나비처럼 성큼 성장한 국내 인디밴드, 포스트 코로나의 영향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번 늘어난 관객 수는 복리이자처럼 계속 증가했다. (뱀파이어위켄드를 저격했다고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잔나비를 위해 쉴드 기사를 쓰기도 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872926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0968563


엘르가든이 헤드라이너였던 2023년 이후에는 프레스룸 앞까지 슬램 족들로 들어찼다. 지난해에는 인기 아이돌밴드 데이식스가 서브헤드라이너로 출연하면서 펜스 오픈런을 하겠다는 팬덤이 밤새 줄을 서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 양팀 팬덤이 싸웠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68/0001084736


올해도 출석했다. 20살, 성인식을 맞은 펜타포트는 이제 여름 페스티벌의 1인자가 됐다. 20주년 치고 다소 초라한 라인업이지만 이 축제를 즐기는 MZ들에게 라인업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은 듯 보였다. 폭염에 줄 서다 쓰러져도 다시 인간 사우나 틈에 껴서 방방 뛰고 기차놀이와 슬램을 즐기는 MZ들, 그 청춘들이 내뿜는 열기에 동참하기 위해 나도 매년 인천을 방문한다.


오랜만에 만난 혁오도 반가웠고, 40도 가까운 폭염에도 트레이드마크인 수트를 곱게 차려입은 펄프 보컬 자비스 브랜스 코커의 노익장(그는 63년생이다)도 놀라웠다. 4대 브릿록 밴드라는데 브릿댄스 보컬인 줄 알 정도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쉴 새 없이 몸을 놀렸다. 밴드의 명징한 악기소리는 관객을 호령하는 주술이 됐다. 1995년 발표한 '커먼 피플'을 부를 때는 떼창이 터졌다.


팝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록페스티벌 덕분에 라디오헤드, 스콜피온스, 위저, 스웨이드, 레드핫칠리페퍼스, 리암갤러거의 비디아이, 나인인치네일스, 푸파이터스, 뮤즈, 후바스탱크 같은 전세계 내로라하는 팝스타들의 무대를 영접할수 있었다. 아마 좀 더 팝 공부를 했다면 이전 헤드라이너였던 더 많은 스타들의 무대를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그저 무지가 한일 따름이다.


소극적인 성격이라 취재원 외에는 친구를 잘 만들지 못하는데 록페스티벌에 함께 다니는 지인들을 만나면서 펜타포트 진짜 헤드라이너라는 김치말이국수도 감사하게 영접할 수 있게 됐다.


올해는 처음으로 부산록페스티벌에 간다. 수도권 외 록페스티벌은 부산이 처음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 내년쯤 후지록페스티벌, 나아가 글래스톤베리도 도전해보고 싶다. 록페스티벌은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록페를 즐기는 모든 이들이 (신체적 나이를 떠나) 젊을 뿐이다. 환갑에도 수트 차림으로 수만 관객을 호령한 펄프 자비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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