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3일,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발표회가 경주에서 열렸다. '선덕여왕'은 톱스타 고현정이 출연한 그해 최고 기대작이었다. 스타의 이름값 때문에 주인공 선덕여왕을 연기한 배우 이요원보다 악역인 미실 역의 고현정이 더 주목받았다.
당시엔 드라마를 제작한 지역에서 제작발표회를 여는 게 관례였다. '선덕여왕'처럼 긴호흡의 사극은 지역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들은 해당 지역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서로의 요구를 적절하게 들어주었다. 제작발표회를 촬영 지역에서 개최하는건 추후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때 관광객 유치 효과 등이 있기 때문이다.
출입기자들은 여의도 MBC 앞에 모여 대절한 버스를 타고 경주에 갔다. 경주 밀레니엄 파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주연배우들, 경주 시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 협찬 기업 관계자, 불국사 주지스님(은 왜 오셨나;;;) 등이 참석했다. 지금은 톱스타지만 당시엔 갓 데뷔한 소녀가수 아이유가 주연배우들 출연 전 OST를 부르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런데 웬걸, 초미의 관심사였던 고현정의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당시 썼던 기사를 찾아보니 "시종일관 질문의 핵심을 피해가며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기자회견과 상관없는 잡담으로 일관해 사회를 보는 한준호 아나운서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이에 MBC 관계자는 “고현정 씨는 사실 이날 오전 7시까지 취침을 요구했지만 촬영 및 제작발표회 일정이 맞물리면서 어쩔 수 없이 밤샘촬영을 강행했다. 30대 후반 여배우가 밤을 새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라고 적었다. 기사니까 횡설수설 잡담이라고 표현했지, 사실 낮술한잔 걸친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 날 제작발표회 사회는 한준호 아나운서가 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준호 아나운서는 MBC에서 눈에 띄는 아나운서는 아니었다. 큰키에 훤칠한 외모, 멘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지만 퇴사한 선배인 김성주, 그리고 막 치고 올라오는 후배 오상진 아나운서에게 밀려 도통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한준호 아나운서는 진행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현정의 멘트를 매끄럽게 정리하며 장내를 안정시켰다. 공적인 장소에서 고현정급 스타의 만행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한준호 아나운서 투입이 '신의 한수'로 비쳐졌다. 그날의 인상을 기사로 정리하며 이날 제작발표회 일등공신으로 한준호 아나운서를 꼽았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079/0002057877
제작발표회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출입기자들이 모여 맥주 한잔을 마시는 자리에 한 아나운서도 참석했다. 고생 많이 하셨다 서로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기사는 엠바고 해제일인 16일에 보도됐다. 평소 제작발표회에서 아나운서의 활약을 조명한 기사가 거의 없는데 내 기사가 아나운서국에서 호평을 얻은 모양이었다. 한준호 아나운서가 고맙다고 밥을 사겠다며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한준호 아나운서와 친분을 쌓게 됐다. 우리는 '늦깎이 입사'라는 공통분모로 가까워졌다. 한 아나운서는 여러 기업을 전전하다 뒤늦게 MBC에 입사했고 나도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뒤늦게 연예부 기자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이 MBC 내 유일한 흙수저 아나운서라며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런 성장 배경때문인지 30대 내내 자기 계발에 박차를 가했다. 사내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 국제대학원에서 수학했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싱가포르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아나운서국이 아닌 타 부서에서 콘텐츠 수출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그러면서도 외대 대학원과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MBC 아나운서가 굳이 저렇게까지 학위를 딸 필요가 있나"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자신을 밀어부쳤다.(앞서 몇몇 글에서 서술했듯 당시엔 지상파 방송사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늦둥이 셋째를 보게 됐다며 수줍게 고백해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는 늦둥이를 낳은 경험을 바탕으로 육아서를 출간하는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나날을 보냈다.
https://v.daum.net/v/20100315161518870
https://v.daum.net/v/20100713120324939
한번은 한준호 아나운서와 내가 주선해 출입기자들과 아나운서들의 친목모임이 열렸다. 김나진 아나운서,허일후 아나운서 등이 참석했고 그때 갓 신입인 배현진 아나운서가 뒤늦게 참석했다. 당시 배 아나운서는 그 해 입사한 여자아나운서 중 가장 주목받는 에이스였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타 매체의 한 여기자가 "어머 현진아"하면서 아는 척을 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여기자에게 쏠렸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네. 현진이가 숙대로 편입하기 전까지 저희 학교였어요."
그 기자는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 신문방송학과 출신이었다. 당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배현진 아나운서의 편입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가 숙대출신인 줄 알고 있었다. 그 여기자가 일부러 무안을 주려고 그 사실을 밝힌건지, 아니면 정말 반가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배 아나운서는 그 자리가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잠시 앉아있다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후 MBC가 두차례에 걸쳐 파업을 하면서 한 아나운서와 배 아나운서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선배이자 노조 간부였던 한 아나운서는 사측에 동조한 배 아나운서를 SNS를 통해 비난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그날의 술자리를 떠올렸다.
MBC 파업 전부터 한준호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때로는 정책사업부, 때로는 예능국 등 아나운서국 외부를 전전했다. 이 기간 가끔 맥주 한잔씩 마시면 그는 '방송쟁이'가 아닌 '회사원'의 삶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면서 "기자님, 저랑 사업 하실래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사업이든 뭐든 같이 하자고 했어야 했다;;;) 나도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도 그에게 소개시켜줬고, 그와 헤어졌을 때도 고민을 토로했다. 한 아나운서는 "기자님이 제 친동생이라면 만나지 말라고 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파업 이후 MBC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2018년, 한 아나운서는 퇴사를 결심했고 나는 그의 퇴사기사를 썼다.
https://www.viva100.com/20180320010007268
대체로 방송사를 퇴사한 아나운서들은 김성주, 전현무 모델을 따라가는 것과 달리 그는 다른 삶을 택했다. 고향선배인 윤영찬 당시 국민소통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변신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같은 해 배현진 아나운서도 MBC를 퇴사하고 자유한국에 입당했다.
이후 한아나운서와 배 아나운서의 행보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그대로다. 한 아나운서는 2020년, 자신이 살던 동네이자 민주당 텃밭인 고양시 을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 의원이 됐고, 배 아나운서는 2018년 송파 을 지역보궐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미래통합당을 거쳐 지금은 자유한국당 소속 재선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송파을 지역은 내가 사는 동네기도 하다. 지난해 피습사건 이후 쾌차해 총선 출마운동에 나섰던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 지하철 역에서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때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고 했던 나는 배현진의원을 보자마자 "저 XXX 기자인데 기억하시겠어요? 예전 한준호 아나운서와 술자리 같이 했잖아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냈다.
한 아나운서가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리고 재선이 확정됐을 때, 두차례에 걸쳐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방송사를 떠나 더이상 마주칠 일 없는 기자인데 옛 인연을 잊지 않았는지 감사하다는 답변이 왔다. 내가 신문사 퇴사 후 방황했을 때, 연락해보니 비교적 한가한 기간 의원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계엄 이후 대선, 그리고 지금까지 숨가쁜 의원님들의 행보를 알기에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저 젊은 시절 친분이 있던 취재원이 좋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길 국민의 한사람으로 기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