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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ul 09. 2021

오픈카와 오키나와

뚜껑이 열리면 더 좋은 것도 있다.


바다 옆으로 멋지게 뻗은 도로들을 보면서 가졌던 소원 중 하나는 멋진 스포츠카를 빌려서 시원하게 달려보는 것이었다. 마침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우리 부부만이 아니었다. 운전을 좋아하는 친구들, 운전을 갓 시작한 친구들뿐 아니라, 심지어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뚜껑 열리는 차"를 타고 저 멋진 도로를 달려보고 싶다고.


그리고 시원한 하늘이 펼쳐진 12월 어느 주말. 우리는 그 꿈을 이루었다. 우리와 비슷한 꿈을 꾸던 친구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멋진 스포츠카를 렌트하여 짧은 로드 트립을 떠난 것이다. 오키나와에 있는 대부분의 렌터카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지루한) 승용차를 빌려주었지만, "럭셔리 자동차 렌탈"이라고 찾아보니 스포츠카를 포함한 고급 (뚜껑 열리는) 승용차를 빌려주는 업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는 셀럽 렌터카[1]라는 이름부터 멋진 곳을 선택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많은 고급 승용차들이 보였다. 미니 (MINI)에서부터 BMW, 벤츠, 아우디, 쉐보레, 포르셰 등등. 그중에서 우리는 자동차계의 정통파 독일에서 건너온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를 빌렸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자동차에 2 명 정도로 여유 있게 타야겠지만, 가난한 대학원생들이 무슨 돈이 있으랴.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를 빌릴 수 있음에 그저 감지덕지하면서, 우리 6명은 조그만 스포츠카 2대에 약간 구겨진 채로 앉아 로드 트립을 떠났다.


셀럽렌터카는 나하 공항 근처 시내에 있었다. 차를 빌린 우리는 곧장 오키나와 동남쪽에 위치한 치넨미사키로 향했다. 굳이 치넨미사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 멋진 자동차에게는 답답한 나하 도심의 도로보다는 교외의 쭉 뻗은 길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번잡한 나하 시내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1] 홈페이지 (일어): https://celeb-r.com  렌터카 회사에서 주차공간을 제공해서, 차를 가지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잠시 차를 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우리처럼 하루정도 기분 내려고 차를 빌리는 사람들이 꽤 되는가 보다.



꽉 찬 차들로 답답했던 나하 시내를 벗어나 니라이 카나이 [2]를 지나는 길이었다. 짧은 터널을 지나자 오키나와 동해 바다의 멋진 풍경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그날따라 유독 맑았던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자동차 지붕을 열고 앉아있던 우리 위로 바로 쏟아졌다. 하늘을 향해 만세를 한 채 손을 쫙 펴보니 바람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간질거리며 빠져나갔다. 12월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멋진 날씨였다.


굽이굽이 진 길을 따라 바닷바람을 느끼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치넨미사키에 도착했다. 치넨미사키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조금은 시끄러웠던 우리 차의 배기음 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리를 쳐다보던 시선들이 '쟤들 왜 이리 시끄러운 차를 타고 왔어?'였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엔 '멋진 차를 타는군!' 하는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에 조금은 취해있었달까. 사실은 그렇게 어렵진 않은 - 약 2-30만 원 정도를 6명이서 나눠내면 12시간 정도 '빌릴' 수 있는 - 모습이지만 말이다.


치넨미사키에서 내린 우리는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나하에서 니라이카나이를 지나 치넨미사키까지 이르는 이 드라이브가 얼마나 멋졌는지, 차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다. 차를 좀 아는 친구들은 변속 타이밍이 느리니 빠르니, Shift 버튼으로 기어 변속을 했느니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중에서 모두의 공감을 깊이 산 감동포인트는 사람 4명을 태우고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에어컨을 켜고도 속도가 안 떨어지고 잘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다들 660cc짜리 경차를 타다 보니, 정작 이런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


[2] Nirai Kanai Bridge Observatory (ニライカナイ橋展望台)
- Chinen Chinen, Nanjo, Okinawa 901-1400, Japan
- 구글 링크: https://goo.gl/maps/knu41sUnuH6PKAF28


오키나와 산타할아버지는 루돌프가 필요없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찾아오신다


바람이 시원히 불어오는 치넨미사키는 조용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복장을 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잠시 숨을 돌린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오키나와 동쪽 편으로 길게 이어진 해중 도로로 향했다. 로드 트립의 매력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최대한 빨리 어딘가로 가기보다는, 오키나와의 멋진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운전했다 (그리고 차를 빌렸으니 그 차에 최대한 오래 있는 게 현명한 소비였다). 밟으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어디에 빨리 가자고 재촉하자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뜨거운 햇살 아래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연신 가다듬으며 드라이빙 하는 그 순간을 즐겼다.


고기와 바다, 그리고 멋진 차와 멋진 친구들이 있어서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해중 도로로 길게 이어진 오키나와의 동쪽 섬들을 누비며 여기저기 탐험했다. '저게 뭐지?'라고 누군가 말하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지만 멋진 자동차와 함께여서 그런지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오키나와의 동쪽을 탐험하다가 우리는 동부의 이케이 (IKEI) 섬에 멈추어 바비큐 파티를 했다. 오픈카에서 바비큐 용품을 내리고, 해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폈다. 바비큐에 진심인 친구 부부는 여행 전날 저녁부터 양념을 준비해왔단다 (참고로 그 친구는 한국으로 유학을 올 때 여분의 신발은 안가져왔지만 바비큐용 쇠꼬챙이는 챙겨왔다).


바비큐 그릴 위에선 양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피우며 익어갔고, 드론을 가지고 온 다른 친구는 해변에 있는 작은 바위들 사이로 드론을 날리며 멋진 영상을 담았다. 날이 더웠기에 고기를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우리는 첨벙 그냥 물에 그냥 뛰어들곤 했다. 자유로웠던 드라이브만큼이나 자유로웠던 하루였다.


오키나와를 여행 중이라면, 하루쯤은 이렇게 멋진 오픈카를 타고 오키나와의 푸른 하늘을 온전히 가진 채 달려보는 건 어떨까? 이런 흔치 않은 호사스러운 경험도 생각보다 가까이서 찾을 수 있다 (글을 마치며 보니 렌터카 PPL글 같아 보이는데 광고 아니다).


서로 돌아가면서 마치 자기 자동차인양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이런 멋진 차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남의 차 앞에서 사진 찍은 것 처럼 어색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드라이빙 코스


남부

- 니라이카나이를 지나 치넨미사키로 향하는 길. 짧은 터널을 통과하면 굽이굽이 이어진 길 앞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 나하공항을 나와서 중부 숙소로 가는 길이라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58번 도로 말고 서쪽 해안에 가까운 길로 가보는 것도 좋다. (구글 맵에서 Urasoe Miyagi Post Office 浦添パルコシティ郵便局가 있는 쪽 길이다). 바다 바로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길을 달릴 수 있다.


중부

 - 58번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관광지들이 몰려있는 서부 해안 (Onna-son)이 나온다. 오키햄 공장 옆을 지나 굽어진 코너를 몇 개 돌아 나오면 르네상스 호텔 옆으로 에메랄드색 바다가 반겨준다.

- 58번 도로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온 6번 도로. 출퇴근할때마다 우리 부부가 지났던 길이다. 양 옆에 펼쳐진 갈대밭 사이로 달릴 때면 마치 하늘 속으로 달리는 것 같다.

- 동부 쪽에선 해중 도로를 지나 이케이 섬을 비롯한 작은 섬들을 이어주는 여러 작은 다리들도 좋다.


북부

- 추라우미 수족관 근처에 숙소가 있다면 코우리 대교는 꼭 달려보자. 

- 시간이 여유가 된다면 58번 국도를 타고 오키나와 북쪽 끝 헤도곶까지 달려도 좋다. 길고 먼 만큼, 더 조용히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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