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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Jul 17. 2021

[여행 속 여행] 자마미 구석구석

스쿠터로 달리는 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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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속 여행] 자마미의 바다


 바다 말고도 섬을 둘러보기 위한 방법으로는 버스, 자전거, 렌터카 그리고 스쿠터가 있다. 버스는 시간 맞추기가 번거로웠고, 이 한산한 섬에는 역시  자동차보다는 스쿠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겁이 많은 나와 달리 잔뜩 기대에 찬 남편을 믿고 2인용 스쿠터를 한 대 빌렸다.

 자마미의 도로는 통행량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탈 수 있었다. 이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아도 신호등은 항구 앞 딱 한 개뿐이었으니, 교통이 복잡하지 않은 건 너무 당연한 소리긴 하다. 다만, 굽이진 산 길이 많고 교행이 어려운 곳도 있으니 속도를 내지 않아야 한다. 급히 갈 이유가 없으니 속도를 낼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별 다른 정보도 계획도 없었지만 구글 지도에 의존해서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익숙한 두 곳의 해변을 둘러본 뒤, 자마미 섬에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지도를 켜서 보니 자마미 섬에는 다섯, 여섯 군데 정도의 전망대가 있다. 먼저 가장 북쪽의 치시 전망대(チシ展望台)로 향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길을 달리다 보면 또 다른 작은 해변 마을을 지나 다시 산으로 오르게 된다. 빨간색 히비스커스가 흐드러지게 핀 전망대가 보인다. 자마미 섬에 여행 온 사람 중에 굳이 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려나 싶은데도, 전망대에는 음수대와 정자가 깔끔하게 세워져 있었다.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한 전망대의 바다 쪽으로는 깎아지르는 절벽이 있고 그 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 오키나와 본섬의 바다전망도 나무랄 데 없지만,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왠지 비슷한 풍경임에도 어딘지 더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히비스커스를 하나 꺾어 들어 귀에 꽂아 본다. 이미 오키나와의 태양에 보기 좋게 그을린 내 얼굴에 꽃까지 꽂으니 영락없는 자마미 아가씨가 된다.  


 또 한 번 길을 달려 이번엔 타카츠키야마(高月山)로 가본다. 전 날 밤에 별을 보러 올랐던 이 산은 항구에서 이어지는 메인 거리를 따라 쭉 걸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다. 메인 골목은 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내가 차가 되어 달린다면 어쩐지 미안해하며 달리게 되는 작은 길이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이 거리에는  '105 스토어'라는 자마미에서 가장 핫한 쇼핑 플레이스가 있다! 이런 말을 듣고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적잖이 실망을 안기게 되겠지만, 실제로 자마미의 슈퍼 중에 가장 늦게까지 하고 다양한 상품을 파는 곳이다. 식료품부터 간단한 기념품까지. 섬의 규모만큼이나 작은 동네 슈퍼의 모습이지만, 자마미 여행을 할 때 항구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길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105 스토어와 그 앞의 담벼락의 시사들은 누군가 자마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금방 만날 수 있는 사진이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여기에 도착하면, 이미 눈에 익은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금방 반가워질 것이다. 우리 역시 처음 보는 곳이지만 다시 만난 듯 반가웠으니까.

  다시 전망대를 가던 길로 돌아오면, 105 스토어를 지나고 중학교를 지나 그대로 오르막을 오르면 된다. 스쿠터로 오르고 있는데도 어젯밤 올랐던 기억에 비해 낮에 올라가는 산은 더 높은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캄캄한 밤에 여길 걸어서 어떻게 올라갔지?'라고 생각이 들 때쯤에도 전망대는 아직이다. 두어 번 같은 생각이 들 때쯤 이제 정상에 도착한다.  

타카츠키야마(高月山) 전망대의 낮과 밤

 낮에 오른 전망대에서는 작은 자마미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참 작은 마을이다. 아마 내가 몸을 뉘어 잠이 든 장소 가운데에서 가장 소박한 곳이 아닐까 싶다. 햇살 아래서 보는 마을은 밤에 달이 비추는 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 뒤로 넘어가려는 해를 보니 작게 보이는 집들의 부엌에서 분주히 저녁 준비가 한창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을의 반대쪽, 그러니까 섬의 동쪽으로는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시가 보인다. 밤에 서서 보면 불빛이 밝은 나하와 자마미의 야경은 사뭇 대조적이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곳에 서서 나하를 보며 '어른이 되면 더 큰 곳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커서 도시로 나간 어른은 다시 이곳에 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 날 노부 상과의 다이빙이 끝나고 '석양 보러 갈래?'라는 말에 바로 따라나섰다. 일본어를 못하는 우리를 데리고 다니느라 과묵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과묵한 노부 상의 제안이 참 반가웠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미처 스쿠터로 가보지 못했던 서쪽 끝의 석양 명소였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석양을 보러 온 다른 사람들도 꽤 있었다. 우리 둘이 조용히 석양을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여럿이 함께 보는 건 또 낯선 경험이었다. 해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하다가 수평선 근처에서 속도를 내어 바다로 들어간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빛으로 발그레졌다.

 




 우리는 고작 4일의 휴가를 내고 왔지만, 섬을 훑어보기에는 감히 모자라지 않았다. 오키나와 본섬의 시골(村)인 요미탄에서는 기꺼이 살겠지만, 자마미는 너무 작아 여기서 사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끼리 농담을 했다. 하지만 매일 비슷한 골목골목을 걷던 발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미리 세우기 좋아하는 나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은 자마미에서는 마음 편히 무계획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떠올리던 '휴양지'의 느낌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이 섬에, 남의 집에 초대받아 들어가듯 다소곳이 신을 벗고 들어와 앉아있는 느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박자박 걷기에 자마미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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