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슈쿠(民宿)에 머무르기
식의 여름휴가를 맞아 주변 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키나와에는 본 섬 외에도 몇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는데, 어디를 가면 좋을지 훑어보던 와중에 자마미 섬에 대한 짧은 후기에 맘이 이끌렸다.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이 들었고, 자마미에서는 시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외국인 여행자의 짧은 리뷰였는데, 이 글을 보고는 바로 다른 후보를 덮어두고 자마미로 행선지를 정했다.
후의 이야기지만 자마미에서의 날들은 정말 그러했다. 눈 뜨면 밥을 먹고 바다로 갔고, 적당히 허기가 지면 다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별을 보러 나갔다. 해와 바다와 별이 전부인 곳.
자마미 섬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신경 썼던 것이 숙소였다. 이렇다 할 호텔도, 에어비앤비도 잘 보이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지만, 알고 보니 대부분의 여행객은 우리나라의 민박에 해당하는 ‘민숙(民宿, 민슈쿠)'에 묶는 것이 보통이었다. 숙박뿐 아니라 보통 조식과 석식까지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민박과의 차이점이다. 우리의 첫 민숙인데 이왕이면 자마미의 이미지와 어울리도록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 가고 싶었다. 너무 현대적이기보다는 깨끗하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곳이 적당할 것 같았다. 많은 민숙들이 (어쩌면 자마미가 유난히 작은 섬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어는 고사하고 일본어 개별 홈페이지도 잘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자마미 섬 여행안내 사이트(https://www.vill.zamami.okinawa.jp)와 구글, 트립어드바이저의 도움으로 숙소를 결정할 수 있었다. 친절하고 식사가 맛있다는 평에 이끌려 '미스마루 민숙'에 가보기로 했다.
자마미 섬에 도착해서 중심가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작은 마을이구나'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보다는 사람을 위한 골목길, 글쎄 작은 일본 경차라면 요리조리 몸을 돌려 교행이 가능한가 싶은 이 거리가 자마미의 중심거리다. 예약한 숙소는 자마미 항에서 이어지는 이 소박한 중심가 초입에 위치한다. 항구에 가까울수록 교통이 좋다고 하는데, 이 섬의 대중교통은 노선이 3개뿐인 버스와 배편이 전부이고, 이 모두가 자마미 항에서 시작되니 맞는 말이긴 하다. 물론 작은 마을이니만큼 항구에서 가깝고 멀고 가 큰 차이를 보이진 않지만, 한 여름의 오키나와 햇빛을 견디며 해변까지 갈 생각을 하면 조금은 숙소의 위치를 고려해볼 만도 하다. 메인 길에서 지도를 보며 한 골목 들어오니 히비스커스가 빼꼼 맞이하여, 처음 보는 골목길도 익숙한 듯 반갑다.
처음 묵는 일본의 민숙. 네 평 남짓한 다다미방 하나, 공용 샤워실과 공용 화장실 두 개가 다인 곳이었지만, 나름대로 객실마다 작은 테라스도 있어 쨍한 햇볕에 옷을 말리기엔 충분했다. 냉장고, 탁자, 티비, 에어컨이 있는 방은 안에서 지내기 부족함이 없었다.
한참 햇빛을 쬐며 놀다 들어오면 간단히 씻고, 빨래를 테라스 건조대에 걸어두고는 에어컨을 세게 틀어본다. 아주머니가 직접 끓이신 차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며 다다미에 누워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티비 화면을 보고 있으면, 낡은 에어컨은 힘을 내어 방 안을 제법 빨리 식혀주었다. 호텔과는 또 다른 아늑함이었다. 어렸을 때 가족 여행에 들른 민박집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자마미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다이빙, 스노클링 위주로 계획을 잡았고 (사실 계획이라고 하기도 쑥스러운 것이 눈을 뜨면 물에 들어가고, 밤에는 별을 보러 산책 가는 가자는 게 계획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수가 많지 않아 여행객으로 붐빈다는 식당을 전전하기보다는 맛있는 집밥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민숙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식사를 하는 다른 가족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식사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 식사 때 맞춰 '오하요 고자이마스'로 시작하는 주인아주머니와의 대화는, 나의 짧은 일본어 탓에 눈짓과 손짓 그리고 번역기까지 총동원되어야만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비치(阿真ビーチ)에 가면 어디가 좋은가요?"
가볍게 건네는 내 질문에,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셨다. 그리고는 번역기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한 톤 올려 발음을 또박또박, 천천히 문장을 읊었다.
"아마비치 안 쪽으로 가면 거북이가 많이 찾아와요, 거북이 먹이가 거기에 있거든요"
섬이니 만큼 아침에 마을 스피커로 바다 상황에 대한 안내방송도 나오는데, 파도가 높은 날은 '오늘은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하에서 출발하는 배는 결항되었습니다'하는 방송이다. 일본어로만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는 여행객들은 버스정류장이자 페리가 들어오는 항구에 가서 게시물을 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번역기를 통해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고대했던 거북이도, 은하수도 잘 만나고 올 수 있었다.
한참 놀고 들어 온 저녁 시간에는 '오늘 거북이는 잘 보았는지',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주제로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특히나 메뉴가 다양한 석식 때는 메뉴 설명도 꼼꼼히 해주셨다. 다소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묵묵히 주방에서 음식을 해주시면, 아주머니께서 어떤 재료 한 요리인지 하나씩 설명해주시는 식이다. 덧붙이자면 손맛 가득한 밥상은 익히 참고했던 후기대로 수준급이었다. 섬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라 특별했고,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오키나와 가정식을 먹고 싶었던 우리에게 딱 맞는 식단이었다.
자마미 섬의 바다와 별도 잊지 못하겠지만, 작은 민박집에서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번역기에 대고 소곤소곤 그렇지만 또렷하게 말씀하시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아직 생생하다. 민박집의 사내아이(우리의 추측으로는 아주머니의 늦둥이 아들, 또는 큰 손주 일지 모르겠다)와도 인사말 정도를 나누었다. 짧은 일어 실력만큼이나 짧은 대화였지만 헤어질 때 아이로부터 직접 만든 선물을 받기도 할 만큼 가까워진 듯했다. 참 정이 많은 곳이다. 자마미가 아닌 곳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은 참 많이 만났지만, 여행지에서 이토록 정을 느낀 경험은 내 기억이 닿는 한 처음이다. 언젠가 자마미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소박한 섬에 어울리는 각자의 작은 민숙을 찾아보기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