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미에서의 하루하루는 단조로웠고, 그래서 풍요로웠다.
우리는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평소라면 30분은 걸릴 준비 시간도 '어차피 곧 바다에 들어갈 거니까'하는 소리를 핑계 삼아 선크림을 얼굴에 바를 수 있도록 적당히 세수만 하면 그만이다.
자마미 섬에는 유명한 두 개의 비치가 있는데, 하나는 아마비치, 그리고 하나는 후루자마미 비치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어느 해변으로 갈지 정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커다란 고민이 된다.
해변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걸어서도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오키나와에 온 뒤로 자주 스노클링을 다녔던 우리는 익숙하게 그물 가방에 오리발과 웻수트를 챙겨 넣는다. 벌써 조금 날금날금해진 그물 가방이 우리가 나름 바닷사람 된 것처럼 보여줘서 식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민박집 골목을 나와 항구가 있는 사거리에서 다다르면 해안선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의 도로이자 이 섬에서 가장 큰 도로가 나온다. 그마저도 한적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끔 지나가는 버스와 차가 구경거리가 된다. 한적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바로 옆에 펼쳐진 바다색 덕분일 것이다.
아마비치는 우리가 자마미로 여행지를 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바다거북이가 먹이를 먹으러 오는 해안이라 해수욕을 하면서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거북이가 많이 나오는 곳에서는 '거북이가 강아지처럼 흔하다'하여 개북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하는데, 나는 강아지처럼 귀여워서 개북이라는 이름이 맘에 든다. 물속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하는 거북이는 헤엄치는 모습이 여유로워 때로는 영험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에 앞서 일단 너무 아름답다. 딱 붙는 수트를 입고 커다란 수경을 통해 보이는 눈, 숨 쉬어보겠다고 한껏 입을 내밀고 호흡기를 문 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 거북이를 수영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여러 블로그 후기글을 보면서도 과연 그런 행운이 나에게도 찾아올지 반신반의했지만, 민숙집 아주머니의 호언장담에 기대를 미처 가라앉히지 못하고 해안을 찾았다.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해변의 꽤 안 쪽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근처에서 한 가족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 얼른 헤엄쳐 가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북이 한 마리가 한가로이 물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니, 바다거북이가 수심 1.5미터 정도나 될까 싶은 얕은 바다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니! 이렇게나 감격스러운 장면을 무미건조하게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스노클을 입에 물고도 '흐흐'하는 웃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거북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저 같이 둥둥 떠서 지켜보았다(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너무 가까이 가거나, 만지는 행위, 거북이 위에서 수영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있다). 거북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물풀을 씹어먹었는데, 거리가 꽤나 가까워서 풀을 씹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도 구경할 수 있는 거북이지만, 이제는 좀 편하게 식사를 하도록 두고 다른 쪽으로 헤엄쳐갔을 때 금방 또 한 마리가 보였다. 오빠에게 알려주려 뒤를 돌았더니 또 한 마리. 여기 정말 거북이들의 해변이구나! 물 위에서만 떠있는 나와 달리, 잠수를 곧잘 하는 오빠는 카메라를 들고 바닥으로 잠수해서 물풀을 뜯는 거북이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서 찍어주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 물풀은 나중에 다이빙하면서도 몇 번 더 볼 수 있었고, 그 근처에서는 어김없이 거북이도 나타났다. 거북이 말고도 아마비치에는 산호초들과 그 곁을 지키는 색색깔의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말미잘이 모여있는 군락체에는 하도 니모들이 많이 살아서 우리끼리 니모 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얕은 바다의 산호초 위에 둥둥 떠서 가만히 보면,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물살에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표현력으로는 파란색, 하늘색, 보라색, 빨간색의 물고기들 정도로밖에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햇살이 들어올 때 얕은 바닷속은 그러한 색들이 어우러져 천연하여 아름답다.
후루자마미비치는 아마비치와는 다르게 뻥 뚫린 느낌이다. 후루자마미(古座間味)가 한자어로 '옛 자마미'이니 예전부터 자마미 섬을 대표하는 해안이 되겠다. 하얀 모래와 바다색이 대조를 이루는데, 바닷물 색도 아마비치보다 더 짙은 푸른색을 띤다. 해안에서 조금만 수영해서 들어가면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데 그래서 그런 짙은 빛깔을 띠나 보다. 산호도 종종 보이고 물고기도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관광안내서에서 스노클링 명소라고 소개하는 것과 달리 우리가 느끼기엔 아마비치와 비교했을 때 여기는 일광욕과 바다수영에 더 최적화된 곳이다. 여느 유명한 해변 관광지처럼 파라솔을 빌려주는 곳과 매점도 있고, 넓은 해변이 펼쳐져있다. 부산 사람인 식은 '해운대랑 비슷하네~'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파랗다 못해 퍼런 바닷빛에서 눈을 못 떼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루는 파고가 높아 해수욕장이 개장하지 않은 날에 들러보았는데 언제 사람이 붐볐냐는 듯 텅 빈 바다가 또 매력적이었다. 그날도 군데군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굳이 수영을 할 게 아니라 한적하게 파도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면 이런 날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마미의 바다는 다이빙 초심자에게도 잔잔하며 다채로운 바닷속을 보여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파고가 높은 날씨 탓에 예정과 다르게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날은 하루뿐이었다. '캣츠 인 케라마'라는 다이빙 샵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으면서도 평이 좋아서 찾았는데, 그곳에서 유명한 가이드인 노부 상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운이 좋아서 단출하게 노부 상과 우리 부부 셋이서만 다이빙을 나갔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옆에서 보기에 노부 상에게는 자마미 바다는 정말 어렸을 적부터 놀던 앞바다 같았다. 한 번은 물속에서 바위에 등을 긁고 있는 거북이를 만났는데, 노부 상은 내 손을 끌어다가 거북이의 등 껍데기 사이사이를 긁어주도록 했다. 본래는 다이빙 중에 수중 생물을 만지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래도 되나?'싶었지만, 노부 상을 따라 살살 등껍질의 이물질을 긁어서 떼어주니, 거북이가 가만히 내 손에 몸을 맡겼다. 그러더니 스윽 바위 사이에 나와 나에게 다른 쪽 등을 내어주는 것이다. '어이, 초보 치고 시원한데 이 쪽도 좀 더 해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황송할 때가! 혹여나 심기에 거슬릴세라 맞은편 등도 살살 긁어주니, 조금 뒤에 만족했는지 다시 바위로 들어가 쉬었다. 아마 여기서 나고 자란(사실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자마미 바다에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 우리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라 추측할 뿐)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바다가 잔잔해서인지 얕은 산호 밭에서 안전정지를 하면서부터 우리끼리 알아서 놀다 오라며 곧 먼저 올라가는 쿨한 모습까지 보였다. 덕분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산호 밭 포인트에서 한참 넋을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노부 상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끔 보여주던 트레이드마크 같은 독특한 자세이다. 바닷속에서 두 팔을 벌려 몸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든 뒤 빙글빙글 도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로워 보여서 노부 상이라면 물속에서 잠도 잘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던 그와 함께한 다이빙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야깃거리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자마미의 거북이들은 그 각각이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바다 환경 연구에도 중요한 주제인데, 해가 가며 그 수가 안타깝게도 줄어들고 있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곳에 대신 조금 더 많은 거북이 와서 쉬다 갈 수 있지 않을지, 가끔 그 바닷속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