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아기가 태어나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
말도 안 된다.
엄마 아빠의 딸이자 동생들의 언니, 누나이자 남편의 아내였던 내가
아기를 낳아버렸다.
두 다리 사이로 '낳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기를 낳기 일주일 전쯤 아기가 크다며 유도분만을 권유받고
엄청난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자연분만을 원했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사선생님의 권유대로 가야겠지만
내 몸과 아이에게 비정상적인 신호는 전혀 없었기에
예정일까지 최대한 아이를 품고 싶었다.
유도분만 실패 후기를 인터넷과 주변에서 여러번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더 겁이 났던 것 같다.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계속 물어보며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를 고민했다.
(나는 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주변에 물어보고 의견을 수합해 따져본다. 물론 타인의 의견을 듣기 전에 일정 부분 내가 어느 한쪽으로 결정내릴 것이라 미리 정해놓긴 한다.ㅎㅎ)
한다 안한다 했다가
결국 안하기로 했다.
그런데 취소한 유도분만일 바로 전날 저녁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간격을 두고 아픈 게 이게 진통이구나 싶었다.
새벽 내내 아파 옆의 남편을 꽉 붙들고 '나 아파 아파' 했다.
안되겠어서 전화를 하고 미리 싸둔 짐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갔더니 아직 1cm만 열렸다며 너무 이르게 왔다 했다.
그래도 입원하여 그때부터 인고의 시간이 흘렀다.
맞기 무서웠던 촉진제를 맞은 후부터는 정말 너무 아팠다.
이부터 양 다리까지 덜덜 떨렸다.
센 진통이 올 때 눈물이 찔끔찔끔 났고 호흡으로 가라앉히려 했지만
오는 순간은 끔찍한 통증으로 멈추고 싶었다.
제왕절개 수술로 해달라고 하는 나의 모습이 계속 그려졌다.
의료진들도 맨 처음부터도 계속 너무 아프다 하는 나를 보며 자연분만을 할 거라곤 못 믿는 눈치였다.
모두 느껴졌다.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옆의 오빠 손을 꼬집으며 버텼다.
오빠는 중간중간 잠들었는데 난 잠을 잘 수 없어 진통이 올 때 미친듯이 오빠 손을 붙잡으며 호흡했다.
중간에 오신 간호사 분이 진통 올 때 아프더라도 기일게 호흡하며 진통을 내려보내야 한다고 해주셨다.
아프다고 숨을 참으면 더 격하게 아파졌다.
간호사분 말대로 진통 오기 직전부터 숨을 길게 내쉬면 덜 아팠다.
그러나 통증이 오는 순간에 숨을 길게 쉰다는 게 무척 어려웠다.
버티고 버텼다. 무통주사 맞을 때까지만 참자!!!
6시간 넘게 진통을 하다가 무통주사를 간신히 맞았다.
맞고 나서는 행복했다.
덜 아팠다. 양 다리는 여전히 덜덜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중간에 잠도 잤다.
그러다 힘주기 시간이 와 너다섯 번 힘주기를 했다.
내가 힘을 잘 못 주는지 간호사분이 내 배 위에 무릎을 대고 온 체중을 실어 눌러주셨다.
그리고 아기가 나왔다.
엄청난 감동은 없었다.
그러나 아기가 내 얼굴 앞으로 왔을 때.
내가 말을 걸었을때 아기의 눈동자가 도로록 굴러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에게 말해보라 하니
아기가 또 남편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쳐다보았다.
임신 중 오빠와 태담했던 우리의 목소리를 아기가 기억하고 있는 걸까?
기억하고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도 않고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아기구나.
(산모가 되기 이틀 전, 유도분만을 취소하고 긴급해진 나는 아이에게 말했었다. 토토야 이제 엄마와 토토는 한 팀이야. 토토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우리는 같이 노력하는 거야. 알겠지? 우리 같이 힘내서 해보자!
그리고 토토가 아래로 내려와줬다.)
이걸 해내게 도와준 남편과 원장님과 간호사 분들 모두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특히 의료진 분들 아니었으면 난 절대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아기 낳는 건 정말 '생'을 건 일이었다.
내가 겪는 엄청난 통증 외에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나의 상처와 아이의 안전, 그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위험을 감수하는 혼돈 그 자체였다.
산통은 단순한 거였다.
기적같은 출산. 기적같은 아이.
기적같이 엄마가 되어버린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