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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y 09. 2021

'밥맛'을 아시나요?

이자카야에서도 쌀밥 찾는 촌스러운 사람

야채튀김, 돈가스, 전, 찹쌀 탕수육, 파스타. 튀긴 음식, 느끼하고 짜고 달달한 소스가 흥건한 음식이나 튀긴 것에 느끼하고 짜고 달달한 소스를 듬뿍 부어 먹는 음식을 좋아했다. 기름 맛, 소스 맛, 맛이 강한 음식을 사랑했다. 역류성 식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게 된 후론 당연히 그 맛난 음식을 못 먹게 됐다. 그러면서 다른 맛을 알게 됐다. 바로 밥맛이다.


외식을 할 때에도 되도록이면 밀가루나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정갈한 한식을 택한다. 20대인 내가 5~60대인 부모님보다 토속 음식점, 한정식집을 더 잘 안다. 늘 내 뱃속 사정을 고려해 슴슴하고 건강한 음식을 파는 한식집을 알아보고 데려가 주는 연인 덕분이다.


밥맛 좋은 한식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다. 이전엔 진밥이던 된밥이던 죽이 된 밥이던 아랑곳 하지 않고 먹었다면 이제는 지은 지 좀 된 밥, 너무 된 밥에는 밥맛이 팍 떨어지고 만다. 반면 가마솥밥, 뚝배기 밥, 방금 막 완성된 밥이라면 밥 냄새만 맡아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밥이 맛있는 집은 대게 반찬이나 메인 음식도 맛있으니 밥맛이 좋다는 건 내겐 맛집 보증 수표와도 같다.


색색깔의 나물 반찬과 찌개, 고기 요리가 가득 차려진 상 앞에서 밥으로 첫술을 뜬다. 뜨거운 밥그릇 속에 진득하게 뭉쳐있는 밥알을 은색 수저로 동그랗게 퍼올린다.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밥 뭉텅이가 혀에 닿으면 알알이 풀어진다. 턱에 힘을 주는 듯 마는 듯 밥알을 살짝씩 씹는다. 단맛이 난다. 밥이 달다는 게 이런 맛이었구나 싶다. 단 밥을 맛본 나는 이마에 인상을 살짝 쓰고 숟가락을 몇 번 휘두르며 앞사람에게 말한다.


음~ 밥도 얼른 먹어봐~ 달아~



백미, 흑미, 현미, 보리, 찹쌀, 조, 기장, 수수. 쌀의 종류, 쌀과 함께 밥이 되는 곡식엔 참 여러 종류가 있다. 난 그중 흰쌀밥을 가장 좋아한다. 알알이 거칠거칠하고 큰 보리밥은 식감은 재밌지만 먹고 나면 항상 속이 더부룩하다. 샛노란 조밥은 보기엔 정말 예쁘지만 너무 쫀득해서 밥 보단 떡 같은 식감에 가까운 탓에 밥을 먹는 느낌이 덜하다. 그리고 미묘하게 흙 맛도 나는 것 같다. 반면 흰쌀은 여러 번 도정을 거친 덕분에 거칠거칠함 없이 입 안에서 동글동글 굴려지다가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그 느낌이 편안하고 재밌다. 밥의 단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것도 같다.


우리 집은 주로 흰쌀에 흑미를 조금씩 섞어 밥을 짓는다. 밥을 씹을 때면 서걱서걱 부드럽게 풀어지는 흰쌀알 사이로 흑미가 톡톡 터진다. 입안의 느낌이 참 재밌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 부드럽고 톡 터지는 달달한 밥맛을 기대하고 밥솥을 열었는데 어쩌다 밥솥이 텅 비어있으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다. 집 잃은 소라게의 마음이 이런 걸까. 뭐 슈퍼에 가서 햇반이라도 사 오면 되지만, 밥은 딱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일분도 지체 없이 바로 퍼먹을 때가 가장 맛있으니까.


배가 정말 아픈데 배가 정말 고플 때. 그런데 죽은 정말 입에도 대기 싫을 때도 나만의 묘책은 쌀밥이다. 따뜻한 쌀밥 반 공기에 두부 1/4 모를 으깨어 섞는다. 거기에 들기름을 두 바퀴 두른 다음 서걱서걱 비비면 끝. 이렇게 먹으면 엄마가 조금 속상해한다. 난 맛있는데···. 어쩌다 간 이자카야에서도 감자 샐러드나 참치타다끼, 나가사끼 짬뽕탕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밥이 그리워진다. 집에서는 샐러드를 먹어도, 떡볶이를 먹어도 옆에 밥을 조금 퍼 둔다. 쌀밥이 없는 식사는 왠지 허전하다. 가히 밥순이다운 면모다.


쌀밥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군침이 돈다. 방금 엄마가  밥을 지은  같다. 쿠쿠가  짓기 임무를 료한 퍼포먼스로 힘차게 뱉어낸 김을 타고  냄새가  문틈을 넘는다. 오늘은  맛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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