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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y 02. 2021

과민성 대장증후군 덕분에 생긴 취미

차 그리고 찻잔

환자분은 우유를 먹으면 안 돼요.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몸에 없는 사람이에요. 유제품은 아예 먹지 마세요.


또 어느 날, 우유 먹고 탈이 났다는 내 말에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술 마시면 안 되고 우유는 절대 마시면 안 된다. 그럼 난 물만 마셔야 하는 건가?

 


난 액체류를 정말 좋아한다. 씹는 것은 종종 귀찮아하지만 마시는 것만큼은 사랑한다. 배가 아프기 전에는 집밥을 먹을 때도 물 대신 우유나 탄산을 마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유나 음료수 게다가 찬물을 마시면 탈이 나고, 생수도 많이 마시면 과식이 되는 것인지 물을 먹고도 복부 팽만감이 느껴졌다. 식사에 제약이 생긴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식수까지 제약이 생기니 참으로 억울했다. 그렇지만 내게도 ‘맛’을 느끼며 마실 수 있는 액체류가 필요했다.


그러다 차맛을 알게 됐다. 아직 직접 다도나 블랜딩을 하는 건 아니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차를 티팟에 우려 마시는 정도. 회사에서도 늘 아아메를 달고 사는 동료들 틈에서 난 핫 민트 티, 핫 캐모마일 티를 읊었다. 얼죽아가 있다면 난 되도록이면 더워 죽어도 뜨거운 걸 찾았다. 내가 생수 말곤 마실 수 있는 게 차뿐이어서 늘 차를 택한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 취향처럼 자리 잡았나 보다. 퇴사 선물로 동료들에게 민트 티 세트를, 친구들에게도 종종 오설록 티 세트를 선물 받았다.


그 덕에 내게 맞는 차, 차마다 다른 맛도 알아갔다. 차에서도 각각 단맛, 청량한 맛, 깊은 맛이 났다. 차갑게 마셔야 맛있는 차도 따로 있었다. 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취미와 취향도 생겼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찻집이 몇 군데 생겼고, 여행을 갈 때도 꼭 그 지역에서 오래되거나 분위기 좋은 찻집을 찾아본다. 소품샵에 갈 때면 나도 모르게 빈티지 찻잔 코너로 몸이 기울어진다. 내게 딱 어울리는 찻잔을 발견한 날은 갖고 싶은 물건을 엄마에게 한 달을 졸라 마침내 손에 쥐게 된 어린아이처럼 퐁퐁 뛰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 제주 여행에서 사 온 찻잔. 딱 내 것 같았다


물론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모든 차가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속이 좋지 않은 날엔 소화 촉진, 복부 팽만감 완화 등의 효과가 있는 레몬밤, 민트  등을 주로 먹는다.


아무리 ‘더워 죽어도 뜨거운 라도, 한여름이나 갈증이 심한 날엔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스 음료를 주문하면서도 종종 이렇게 요청한다. “마테 레몬그라스 아이스, 얼음은 아주 조금만 넣어주실  있나요?” 그럼 카페 직원은 대게 이런 반응이다. “? 그럼 음료 양이 많이 줄어드는데 괜찮으세요?” 혹은 “아주   싫으신 거죠? 그럼  많이, 얼음은 조금 넣어볼게요.”  아무렴 좋다고 답한다. 이런 까탈스러운 주문도 이젠 미안해서 외출 시엔 직접 음료를 준비한다. 차를 미리 생수에 우려 스탠리 텀블러에 담고, 텀블러를 냉장실에 30 정도 넣어둔다. 그걸 가지고 외출하면  적당히 시원한 온도의 차를 마실  있다. 요즘은 동백꽃 티에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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