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말에 벽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으레 나눠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 고기를 배불리 먹은 뒤 후식으로 고기 불판에서 남은 고기와 김치, 김가루, 참기름을 마구 섞은 볶음밥과 홀수끼리 먹을 때면 남은 한 조각을 두고 “네가 먹어라, 난 배부르다.”, “아니다, 이걸 세 조각으로 나눠보자.” 하고 눈치 싸움하게 되는 피자, 숟가락을 입에 붙이고 요란스럽게 호호 불은 후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입 안에서 식혀 먹는 양푼 김치찌개 같은 것들.
꼭 이런 음식이 아니더라도 대게 음식이란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더 맛있어는 법이지만, 꼭 나눠 먹거나 동시에 먹어야 맛있는 게 있다. 누군가 시원하게 동조하지 않으면 김이 팍 새 버리는 것. 바로 ‘탄산’이다.
왠지 콜라와 사이다만큼은 혼자 마실 때 제 맛이 안 사는 느낌이다. 사람들과 동그랗게 모여 앉아 타들어가는 듯한 목을 잡고 제 허벅지를 찰싹 때려가며 “크하~” 하고 돌림노래처럼 표효할 때가 가장 맛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건 참 탄산을 좋아한다. 내 주변에도 역시 탄산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다. 탄산음료 2잔이 들어간 세트 메뉴를 보곤 “같은 값이면 음료 두 잔이 들어가 있는 세트가 낫지 않냐”묻는 사람 앞에서 난 고민한다. 퍽퍽한 음식을 먹다가 턱턱 막힌 목을 잡고 “으- 사이다 좀 시킬까?” 하는 사람 앞에서 난 고민한다. 난 탄산을 안 먹기 때문이다. 아니 못 먹기 때문이다.
탄산도 시킬까요? 사이다? 아니면 콜라?
전 괜찮아요. 탄산을 잘 안 먹어서요.
..? 탄산을요? 왜요?
나라고 모를까? 타닥타닥 목구멍을 따갑게 괴롭히며 온몸에 청량감을 주는 그 맛을, 내 식도의 길이를 새삼 느끼게 하는 그 따가운 감각을 변태처럼 감미하며 “크하~” 하고 내뱉을 때의 희열감을, 눈물이 핑 돌 때의 카타르시스를. 차돌 된장찌개 백반도 탄산과 함께 넘기던 나인걸.
내가 “전 괜찮아요.”라고 하면 간혹 어떤 상대는 “아, 그래요? 그럼 전 마실게요.” 하는 반면, 대부분의 경우 그럼 본인도 안 먹겠다며 잠시 들떴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이 느꼈을 심정을 좀 많이 과장하자면 차단당한 느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한테 인스타 언팔당한 느낌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위장병엔 매운맛보다도 더 치명적인 게 바로 단맛, 짠맛이다. 맵단짠을 빼고 한국 음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만, 내게 설탕은 달콤한 행복이 아니라 기필코 피해야만 하는 존재다.
이전에 ‘콜라를 끓이면 무엇이 남을까?’가 화두에 오르면서 너도나도 집에서 실험을 하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실험 결과 콜라 한 캔에는 10 티스푼 분량의 설탕이 들어있으며, 세계 보건기구에서 권고하는 하루 섭취 설탕량은 5 티스푼이라 알려졌다.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준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에 충격을 받고서도 콜라, 사이다, 데미소다, 체리콕을 즐기던 나도 위가 고장 난 후엔 단번에 탄산음료를 끊었다. 그 이후 아주 간혹 탄산을 마실 때마다 너무 달아서 인상을 쓰게 된다. 설탕 덩어리라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탄산을 들이켜며 캬~ 크하~ 하고 표효하는 사람들 틈에서 난 미지근한 생수로 막힌 목을 천천히 달래 왔다. 그러다 보니 갈증 해소엔 미지근한 물 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젠 물 마시듯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 곁에서 ‘역시 음료랑 물은 다르다’며, ‘음료는 물이 될 수 없다’며, ‘모름지기 물을 많이 마셔서 몸에 나쁠 것 없다’며 잔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누군가 “탄산 시킬까요?”라는 말에 굳이 ‘난 탄산 안 먹는다’는 말로 김을 새게 하진 않는다. 일단 “좋아요”로 응수하길 선택했다. “전 아주 조금만 마실게요.” 하고, 상대의 속도에 맞춰 첫 모금 정도는 함께한다. 나 역시 크하~ 하고 시원한 척 표효한다. 물론, 난 위장에 흘러 내려갈 것도 없을 정도의 아주 적은 양으로 혀만 축인다.
P.S 요즘 저는 탄산 대신 차 맛을 알게 되었어요. 다음 글에선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게요 :)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45일 차 _ 전 탄산을 안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