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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y 20. 2021

어른에게도 동화가 필요해

우쓰기 미호 | 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최근에 어린이 동화책을 샀다. 아는 어린이에게 선물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달랑 동화책 한 권을 들고 계산대로 가니, 결제를 도와주던 직원 분이 내게 어린이용 타요 마스크 두 개를 내밀었다. 동화책이니 당연히 어린이 선물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지금 어린이들은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보지만 내가 어린이일  그런  없었다. 뭔갈 공부해야  때도  때도 동화책과 함께했다. 토요일의 초등학교 앞에선 이런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도서 판매원이 후문 앞에 가판대를 차리고  위에 알록달록한 동화 전집을 펼쳐둔다. 리곤 아이를 데리러  엄마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럼 판매원의 입김에 솔깃한 엄마들이 셋넷씩 모여 가판대를 동그랗게 둘러싼다.


덕분에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어느 집이던 한 시리즈에 10권에서 20권까지 나오는 동화 전집이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있었다. 우리 집 키 큰 갈색 책장에도 맨 아래 두 칸의 주인은 과학동화 전집과 전래동화 전집, 만화로 보는 세계사였다.


하지만 이런 동화책 열풍 속에서도 난 동화던 만화던 책의 형태를 띠는 건 멀리 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건 영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화를 한참 볼 시기에서 20년은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동화를 보기 시작했다. 동심을 찾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감을 얻거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동화 코너로 몸이 기울어진다.


우쓰기 미호 | 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는 내가 어른이 되어 본 첫 동화책이다. 주인공은 닭 얼굴 모양의 마스크를 쓴 치킨 마스크. 치킨 마스크 주변엔 장수풍뎅이 마스크, 개구리 마스크, 햄스터 마스크, 곰 마스크 등 각자 본인만의 뚜렷한 장점을 지닌 친구들이 있다. 그 틈에서 치킨 마스크는 혼란스럽다. 자신은 잘하는 게 없는 마스크 같기 때문이다. 치킨 마스크는 다른 마스크를 흉내 내어 보다가 또다시 자신감을 잃고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고민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은 치킨 마스크도 자신 역시 멋있는 마스크 임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난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흠칫 놀랐다. 내가 이전에 쓴 에세이 내게 굴러와 준 동그라미 친구들에게​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을 동물 모양의 마스크에 비유했다면, 난 도형에 비유했다. 세모의 기질을 지닌 내가 동그라미, 팔각형, 네모 등 다양한 모양의 도형 틈에서 지내면서, 다른 도형의 어느 면을 부러워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결국 세모인 나도 좋은 도형임을 알게 된 과정을 쓴 글이다. 때문에 치킨 마스크의 저자도 어떤 것을 고민하고 어떻게 마스크라는 소재를 떠올렸으며,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더 잘 공감하고 느낄 수 있었다.


동화도 어른이 쓴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지만 어른이 된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의 경험, 경험으로 얻은 통찰을 기반으로 어린이에게 주고 싶은 교훈을 담는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동화를 봐도 유치하지가 않다.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은 고민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하니까. 공감도 된다.


그런데 어른인 우리는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을 때,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 느낄 때 대부분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본다. 말 더듬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법, 대인관계 넓히는 법,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고 상대하는 법 등. 내가 직면한 문제에 즉각적인 도움을 주는 좋은 책이 많다. 하지만 때론 이런 책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그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게 해 심리적으로 힘들어질 때도 있다.


난 그런 상태라면 에세이보단 동화를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동화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보통은 이게 옳다’와 같은 표현이 드물다. 너의 모습 그대로로 괜찮다고 한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색이며 너도 너만의 색을 찾아보라 한다. 문제에 직면해 빠르게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문제를 제쳐두고 나를 다독이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 그럴 땐 동화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독자를 어린이로 둔 도서이기 때문에 활자에도 때가 묻어있지 않고 순수하다. 알록달록 귀여운 삽화나 일러스트를 보다 보면 마음이 한결 깨끗해지기까지 한다.



난 어떤 사람인지 자아 정체성 찾기에서 고민에 빠진 어른,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속앓이 하는 어른에게 이 동화 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를 추천한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65일 차 _ 어른에게도 동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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