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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Apr 01. 2022

어깨 빠진 이야기

2022년 1월 3일


새해를 맞이하고는 첫 강습인 1월 3일. 지각과 결석이 많은, 성인 강습 반이지만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정시에 출석했고, 그중 누구는 ‘담배를 끊었다’ 자랑하며 작심삼일의 의미를 되뇌게 했다. 특별히 올해엔 어떤 다짐도 하지 않은 내게, 딱히 계획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어지는 일상조차 뒤흔들 일이 일어났다.


강습 중에 어깨가 쑥 빠져 버린 것이다. -쑥? 뽁? 뚜둑? 어깨 빠진 찰나의 순간을 어떤 말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잡초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어깨가 정말 밭에 난 잡초 뽑듯 빠졌으니까- 정확히는 힘껏 스윙해 공을 저 멀리 앞 벽으로 보낼 때 어깨가  빠졌다가, 팔이 반동으로 인해 내 몸 쪽으로 돌아오는 순간  끼워졌다. 불과 일초만에 신체 일부를 빼앗겼다가 되찾았다.


삽시간에 상실감에 이어 안도감을 인지하자마자 어깨가 아래로 추-욱 처지는 게 느껴졌다. 내 어깨가 나의 것이 아닌 듯했다. 조심성 없는 내겐 몸에 생채기가 나는 일쯤은 부지기수인데, 빠졌다가 돌아온 어깨의 통증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욱신거리는 팔을 붙잡은 채 묘한 표정으로 코치님에게 말했다.


“저 팔이 빠졌다가 다시 껴졌어요."


코치님은 나보다 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팔이 빠졌다고요???”


그는 공을 칠 힘을 상실해버린 나를 일단 코트 밖으로 격리시켰다. 벤치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코트 유리창 너머의 격렬한 움직임들을 따라 바쁘게 눈을 굴리며 어깨의 이상한 감각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런 내 옆의 동료들은 일제히 눈썹을 꿈틀거리며, 어깨가 빠졌다가 스스로 끼워진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경악에 가까운 의구심을 뿜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트 밖으로 나온 코치님은 진지한 눈으로 내 양 어깨의 높낮이를 확인했다가, 팔을 들었다 놓았다가, 내회전 했다 외회전 했다가, 내려놓았다. 좀 욱신거리긴 하지만 천천히라도 올라가고 돌아갔다. 오늘 강습에선 고스트 샷을 했는데, 내가 그나마 잘하는 기술이라 유난히도 욕심이 났다. 그래서 마음이 앞서 올바르지 않은 자세로 라켓을 마냥 휘둘러버린 것-스포츠 외상의 가장 큰 원인-이 원인일 거라 자가 진단했는데, 코치님은 아주 단호하게도 '근육 부족'이 원인이라 진단했다. 어깨에 근육이 없으니 어깨가 팔을 잡아주지 못하고 팔만 뻗어 나가 버린 탓이라고. 몸을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고,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에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 숱하게 들었고 정말 '듣기만' 했던 코치님의 잔소리-등근육 좀 키워라, 상체 운동 좀 해라, 팔랑거리지 말고 몸에 힘 좀 주고 다녀라-들이 가슴에 콱 박혔다. 이제야. 오늘은 찜질 좀 하고 자라는 새로운 잔소리(아니 당부) 속에서 오른팔을 팔랑이며 조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크게 다친 건 아닌거 같은데? 내일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하는 안일한 생각과 ‘어떡해 어떡해! 이게 도대체 무슨 통증이지. 내일 당장 병원 가야겠다.’ 하는 요란스러운 걱정이 시소를 탔다.  


숟가락으로 찌개를 퍼 입으로 가져가는데 팔이 잔바람에 바들거리는 강아지풀처럼 떨렸다. 좀처럼 팔을 올릴 수가 없어 왼손으로 수저를 꾸깃꾸깃 쥐었다. 그러나 젓가락질까지 왼손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 간단한 일에도 다섯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정말 많은 근육이 필요하단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일어난 일은 예삿일이 아니란 걸 확신했다.


다친 어깨를 신경 쓰며 침대에 누웠다. 어깨와 팔이 욱신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까만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자니 후회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까 어깨에 힘 조금만 주고 칠걸··· 공 조금만 더 살살 칠걸··· 아니 애초에 오늘 운동을 가지 말걸···.’ 그리고는 올해엔 다짐 같은 것을 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조심성 없는 내겐 새해가 아니더라도 늘 주술처럼 외워야 하는 것이 있었다. 몸조심. 몸조심. 1월 1일 새해에 이 주술을 외웠더라면, 작심삼일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는 무사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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