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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Nov 08. 2021

스쿼시는 싸대기 때리듯

2021년 7월 21일

강습이 진행 중인 코트 안에선 한 사람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보통은 수강생들에게 주문을 하거나 가끔은 호통 치는 강사님의 말소리다. 자세를 낮춰라, 손목 접지 말아라, 발을 빠르게 움직여라, 라켓 다시 잡아라. 그중에서도 초급반, 아직 세 번째 수업 중인 코트 안에선 이 말이 가장 많이 울린다.


“자신감 있게 쳐요, 세게!”


난 총기 잃은 눈으로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다른 두 명도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본인의 말소리에 몸은 물론 마음조차 움직이지 않은 세 수강생을 알아차린 그는 살짝 머뭇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싸대기 때린다고 생각해요. 다들 한 번쯤 때려봤죠?”


음? 신선한 설명이 난데없이 내 두 귀를 치고 들어왔다. 세 수강생 모두가 일제히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 개의 또렷한 시선을 느낀 그는 손바닥을 활짝 펼쳐 허공에 스윙을 하며 시범을 보였는데, 흡사 싸대기 좀 갈겨본 사람의 모양새였다. 그의 적나라한 설명에 난 ‘아, 이제 정확히 알겠어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실제 몸짓으로도 응수하고 싶었지만, 사실 싸대기를 때려본 적 없는 나에겐 별다른 효력이 없는 주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난 ‘때리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냈다. 누구를 떠올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말 못 한다.



P.S 그 후로도 그는 싸대기 이론이 수강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는지 꽤 자주 언급했는데, 그가 싸대기 이론을 펼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느낌표와 물음표가 시소를 탔다. 그 이론을 실습에 적용하기 위해 ‘다음 수업 전까지 싸대기 한번 때려보고 와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예상대로 싸대기 날릴 일은 없었지만, 이후 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계속 복기할 수는 있었다. ‘스쿼시는 싸대기 때리듯.’ ‘싸대기 때리듯’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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