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과 부모의 청춘을 맞바꿨다고만 생각이 들 때.
얼마 전에 난, 별다른 계획 없이 퇴사를 했다. 내가 수년간 출퇴근 길에만 매일 3시간씩을 내버리다가 별안간 시간 부자가 되어 버린 사이, 엄마의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칼 틈에서 더부살이하던 몇 흰 놈들은 정수리까지 집을 넓혀 새끼를 쳤고, 엄마 눈가에 기생하던 주름도 터를 단단히 잡고 눌러앉았다.
난 엄마의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자마자, 엄마가 농후하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만 졌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 오늘 저녁엔 수육 먹자! 내가 한번 만들어볼게.", "엄마, 우리 내일 호수 공원 산책 갈래?" 하고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오늘 역시 엄마와의 시간을 보낸 날이었다. 모바일로 신청해도 되는 실비 보험 청구를, 이번엔 건수가 많아서 오히려 고객센터에 가서 하는 게 낫다며 구태여 집 밖으로 나갈 이유를 만들었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국숫집에 가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메뉴(엄마는 얼큰, 나는 슴슴한 맛)를 호로록 골라 먹고, 보험사에 들러 일을 봤다. 그리곤 보험사 근처의 별다방 창가에 앉아 엄청 단 라떼를 즐겼다. 서로의 핸드폰 속 사진을 디저트 삼아 이야기를 곁들였다. 언제나처럼 엄마 핸드폰 속엔 우리 삼 남매가 자는 모습, 입을 크게 벌려 뭔갈 먹고 있는 모습 등을 마구잡이로 찍은 사진, 가족 여행 사진을 모아 만든 콜라주가 가득했다. 엄마가 내게 콜라주 사진을 보이며 자랑하면, 난 이런 거 어디서 배웠냐며 웃고, 엄마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또 내 핸드폰 속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다른 이야기를 하고,를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나는 90년대 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어딘가에 글을 게시할 때, 마땅히 어울리는 사진과 함께이면 좋겠다 싶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족 앨범을 찾았다. 대략 8개의 앨범 중 모서리가 가장 닳아 뭉뚝하고, 두꺼운 앨범을 골라 펼쳤다. 처음 보는 사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난 "엄마! 이거 봐!" 하고 요란을 떨었고, 주방에서 나물 세 종류쯤을 데치며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는 내가 몇 번을 불러도 귀찮아하지 않고 사진을 함께 보며 웃었다.
앨범 속엔 역시 우리 삼 남매의 어린 시절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간혹 삼 남매 옆에 선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20대 후반의 엄마, 아빠, 갓난쟁이 나의 모습에서, 갓난쟁이였던 내가 15살이 된 해에 떠난 첫 가족 해외여행에서의 엄마, 아빠 모습까지.
15살이었던 나는, 이젠 청소년기를 한참 전에 지나 어른이 되었고, 엄마가 뱃속에 날 품은 나이와는 올해로 동갑이 되었다. 내 나이가,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그때의 엄마 역시 아직 어리고, 젊고, 청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마음속엔 '나는 엄마의 청춘을 잡아먹고 자랐구나'하는, 말로 표현 못할 뭉클함과 미안함만 가득 찼다.
그런데 오늘 오래된 앨범 속 엄마, 아빠의 모습과, 핸드폰 속의 가족사진을 보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 엄마의 모습을 보곤 ‘아, 엄마, 아빠가 나의 성장을 본인의 청춘과 맞바꾼 것이 아니고, 그들의 청춘과 함께 나도 성장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혼자서 과거에 엮여 품고 있던 마음의 부채를 오늘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다.
아빠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왔다는 61번째 생일로 '새로 태어난 해, 환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환갑'이다. 이제는 나의 청춘과 새로 피어날 엄마, 아빠의 청춘이 함께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더 든든히 먹고, 웃고, 건강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