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건 아니구요, 과자를 먹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우리 집엔 설과 추석, 그리고 할아버지 기일 이렇게 일 년에 세 번의 제사상이 거실 한가운데에 차려졌다. 어른들은 동이 트자마자 분주히 움직였고, 곧 제기 위로 각종 과일과 고기, 전 등을 봉긋 쌓아 올리며 제사상을 척척 차려냈다. 언니와 남동생, 나와 사촌 형제들은 제사상 위로 좌우 열 맞춰 채워지는 음식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어른들이 시키는 순서에 맞춰 절을 하며 눈으로는 제일 먼저 먹고 싶은 음식을 찍어뒀다. 온 가족이 함께 큰절을 하는 것으로 마침내 제사가 끝나면, 어른 중 한 명이 “이제 먹어도 돼~ 상 정리한 다음에 먹어야 하는 거 알지~?” 하고 말했다.
우리는 상 위의 음식들을 일사불란하게 나른 후에 각자 바나나, 딸기, 밤, 동그랑땡 등을 하나씩 집었다. 명절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무엇을 먹을까 한참 고민했다. 그중 한과는 아무도 탐을 내지 않는 비인기 품목이기 때문에 굳이 빨리 손에 들지 않아도 되었다.
난 어릴 때부터 유과와 약과 같은 한과를 참 좋아했다. 입으로 베어 물 때의 포슬포슬하기도, 바삭하기도, 꾸덕하기도 한 식감이 재밌을뿐더러 달달한 맛이 좋았다. 그런 한과는 내겐 제사 지낸 후에나 먹을 수 있는 고급 간식이었다. 제사상엔 항시 오르는 음식 중 하나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한과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 아니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십 년이 훌쩍 넘도록 해마다 세 번은 이 한과를 잔뜩 먹을 수 있었는데, 몇 해 전 할머니가 ‘이젠 힘들어서 제사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후론 제사상 위의 한과도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우리에게 과자를 잘 사주지 않았다. 대신 건강한 쌀 튀밥과 뻥튀기 같은 것이 집에 항상 있었다. 플라스틱 그릇에 튀밥을 넘치듯 담아 숙제하면서, 텔레비전 보면서, 놀다가 들어와서도 먹었다. 이제는 과자를 사 먹는다면 허니버터칩이나 자가비 같은 짭짤하고 단 맛을 고르지 굳이 뻥튀기나 한과 같은 과자를 고르진 않는다(무엇보다 한과 자체가 비싸다). 게다가 옛날엔 뻥이요 아저씨가 동네에 종종 왔는데, 요즘은 전통 시장에 가야 뻥튀기나 한과를 살 수 있다. 때문에 가끔 한과 생각이 나도 바로 찾아 먹을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과자 코너에서 한과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한 봉지 집어 들었다. 혹시나 부서질까 싶어 한과를 소중히 안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어? 나 좀 어른이 된 것 같은데?' 하고. 특정일에 어른들이 내어줄 때만 먹을 수 있던 음식을, 이제는 제 돈 주고 직접 사 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이다. 정확히는 음식을 맛뿐 아니라 추억으로도 먹는 어른이 된 것이다.
침대에 앉아서 한과를 봉지 채 잡고 와그작와그작 먹으며 또 생각했다.
내가 물리적인 어른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늘 ‘어른’을 떠올리면 나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하며 제 힘으로 돈을 벌게 되면 스스로 어른이라 느낄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또 결혼을 진지하게 계획하게 되면 어른이라 느낄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다. 사실 이미 어른이 된 이들에겐,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은 이렇게 과자 먹을 때처럼 별 것 아닌 일상의 순간 곳곳에 깔려있는 거였다.
'난 뭘 과자 하나 먹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생각을 할까?' 싶어 생각을 접고 다시 한과 봉지를 손에 들었다. 음~ 이 슴슴하면서도 곡물의 단맛이 살짝 느껴지는 맛. 어쩌면 난 어른의 맛(재료 본연의 맛이나, 슴슴한 맛을 즐기는 사람은 왠지 어른처럼 느껴진다)을 어릴 때부터 알았던 걸까? 아무튼, 한과는 너무 맛있어!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2일 차 _ 어른이 되었구나 싶을 때